그런데 일본어를 하지 못합니다.
아마도 내가 잡코리아 올려놓았던 이력서를 보고 전화를 한 듯하다.
처음 헤드헌터가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에 지원에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을 때 뭔가 큰 착오가 있는 줄 알았다. 왜냐하면 회사는 도쿄에 있고, 도쿄에서 일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처음 한 말은 “저는 일본어를 할 줄 몰라요”였다. 일본어도 할 줄 모르는 내게 도쿄에 있는 회사를 소개하다니. 잘못 전화를 걸었나 확신했기 때문이다.
헤드헌터에 말에 의하면 도쿄에 있는 미국 회사이고, 회사에서는 한국어와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IT경력이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도쿄에서 생활을 해야 해서 일본어를 하면 당연히 좋겠지만 회사에서는 일본어를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한국에는 지사가 없는 미국계 회사지만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뭔가 혹했다. 혹했다는 표현이 맞다. 도쿄에서 일하지만 일본어를 요구하지 않는 회사라니. 회사에서는 다양한 인종이 일하고 있기에 공식언어가 영어라서 일본어를 쓸 일이 전혀 없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사기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일본에 있는 미국계 회사라지만 그래도 일본 지사인데 정말 일본어로 말하지 않아도 된다니. 그런 회사를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깐 혹했지만 의심이 들었다.
우선 면접을 보는 건 돈이 드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면접을 보겠다고 응했다. 근데 잠시만, 나는 한국에 있고 회사는 일본에 있는데 면접은 또 어찌 볼 것인가. 헤드헌터는 모든 면접은 스카이프로 이루어지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 대답 역시 혹했고 의구심이 들었다. 한국에서 비대면으로 면접을 본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면접을 보러 가려면 면접 준비만이 아니라 옷은 무얼 입고 가야 하는지, 화장은 어찌해야 좀 더 신뢰감을 줄 수 있는지 외적인 면에 대해서도 신경이 적잖게 쓰인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대면 면접이라고 들었을 때 혹했다. 합리적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역시나 의심이 들었다. 사기가 아닌가 하는. 혹하고 의심 한가득 면접을 보았고, 그리고 나는 현재까지도 같은 회사에서 5년째 일하고 있다.
헤드헌터가 하는 말은 모두 맞았다. 나는 회사에서 한국어와 영어만 쓰면 된다. 업무를 하면서 일본어가 전혀 필요 없었고, 회사에서 모든 회의와 동료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영어로 이루어졌다. 회사에는 일본인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인, 중국인, 미국인, 인도인 등등 정말 다국적의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핑계를 들자면 하루에 주 5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즉 8시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일본어를 쓰지 않고 생활하다 보니 도쿄에 살고 있지만 일본어를 못하는 외국인이 되어있었다. 한국에 살 적 종종 한국에 10년을 살았는데, 한국말을 못 하는 외국인을 볼 적이면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하면서, 정말 솔직히 말해서 게으르기 때문이고, 한심하다는 생각까지 한 적이 있다. 모든 것은 속단하면 안 된다. 인생에 있어서 100% 확신을 가져서도 안된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그렇게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조금 불편했다. 특히 식당이나 카페 혹은 편의점에 가서 주문을 제대로 못할 때면 답답했었다. 그래서 처음 공부한 일본어는 바로 주문을 위한 일본어들이었다. 생존에 필요한 일본어들을익히고 낯설기만 한 일본어 간판들이 눈에 익숙해지고 나만의 생활 반경이 생기기 시작하니 그 불편한 감정들은 모두 사라져 버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불편하지가 않았다. 이젠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들이 익숙해져 버렸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말이다. 주변에 영어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을 만들었고, 동사무소나 은행에서는 일본어가 능숙하지 않으니 도움을 달라고 말하는 것을 뻔뻔하게 요청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일본어를 포기한 건 아니다. 매일매일 일본어 공부를 하자고 마음을 먹는다. 나는 대단하게 의지가 강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매일 다짐은 하지만 실천을 못하기 때문이다.
일본 오고 한 6개월 만인가, 노재팬과 관련한 운동이 한국에서 발생했다. 일본에 살고 있고, 일본에서 살면서 모든 일본 제품들을 사야 하는데 왠지 그것으로 죄스러운 마음이 생겼다. 나는 대단히 애국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나온 역사에 대해서 무지한 인간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에 살기 시작하면서 일본살이에 대해서 매일의 기록을 하고자 했었다. 일본살이보다는 외국살이에 대한 삶에 대한 기록을 하고자 했던 게 더 맞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도쿄이기 때문에 도쿄에 관련한 것들, 일본 문화들에 대해서 글에 녹여내지 않을 수가 없었기에 도쿄살이에 대한 기록을 쓰는 것은 뭔가 옳지 않다고 느껴서 관련 글을 쓰지 않기로 했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다고 해서 뭔가 갑자기 일본에 호의적으로 변했다는 건 아니다. 단지, 내가 쓰고자 하는 것은 해외살이에 대한 내용이라고 보면 되겠다. 한국 문화에 익숙해 살던 내가 외국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들. 또 보다는 그냥 내 삶의 관한 기록이라고 해두는 게 더 적절하겠다.
물론 코로나라는 것이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우리 모두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삶으로 그 삶의 방향이 변경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5년의 삶 동안 3년간은 코로나가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서 가장 큰 변화는 재택근무의 시작이다. 코로나 이후로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회사를 가지 않고 업무를 한다는 것을 상상도 못 했던 내게 이제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큰 부담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재택근무의 가능성을 상상도 못 하던 내게 이제는 회사로 출근하는 큰 불편으로 다가온다.
코로나가 시작되어 얼마 되지 않아 도쿄에서는 세미락다운이 있었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었기에, 모두가 그렇듯, 삶의 무력감을 가져왔다. 또한 코로나 시작 후 2년간 하늘길이 막혀 가족을 보러 갈 수 없는 상황은 참 나를 힘들게 했다. 도쿄 사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바로 한국과 가까워 언제든지 원하면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나러 갈 수 있었건 것이었다. 2년 만의 가족들을 만났을 때의 그 감격이란.
5년간의 도쿄의 삶에서 인생에서 뭐든 장담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다.
나는 여기서 외국인이기에 “앞으로 일본에서는 얼마나 사실 생각이세요? 일본에서 사실 생각인가요? 아니면 한국에서 사실 생각인가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앞으로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 현 직장의 오퍼를 받고 도쿄로 이사 오기 전에는 2년만 살아보고 결정하자고 생각했는데 2년이란 시간을 정말 쏜살 같이 흘러갔고, 어디서 살지 하는 그 물음에 답해야 하는지도 잊어버렸다. 그냥 일하고 현재의 삶을 열심히 살아갈 뿐 나도 내가 어디에 살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어디에 사는지 보다는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닌가.
언어를 못하기 때문에 그들 문화에 대해서 안다고 자부할 수 없다. 아마도 내가 놓치고 살아가는 부분들이 많을 것이다. 누가 도쿄에 놀러 와도 유창한 일본어로 가이드를 해주지도 못한다. 주변에 일본 친구들도 그리 많지도 않다. 참 아이러니한 삶이다. 도쿄에서 일하지만 일본어를 못하는 내가 살아가는 일본에서의 삶. 그 기록을 지금부터 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