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부러운 감정은 들지 않았다.
올해 여름,
참으로다 많은 감정들이 오고 가는 여름이다.
좋아하는 아이돌이 있다는 건 어떤 새로운 즐거움을 준다. 이를 덕질로 정의하겠다. 대가를 원하지 않는 순수한 즐거움과 나와 연결고리가 전혀 없는 누군가를 응원하게 되고 지지하게 되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더불어 그들로부터 영감을 받고, 나도 더 열심히 살고 싶다 하는 뭔가 모를 동기부여도 함께 준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감정이다.
올해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가벼운 인간관계를 맺자, 굳이 깊고 서로를 진득하니 감정을 공유하는 관계가 필요할까 하는 마음에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났다. 필요할 때 함께 어울리고자 하는 마음에서 파생되었고 또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곤함과 상처를 줄이기 위함도 있었다.
이제까지 감정을 공유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그 시절 우리는 참 즐거웠고 많은 추억을 공유했지만 결국 아무 이유 없이 정말 아무 이유 없이, 하나 이유를 대자면 '세월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서로 다른 곳에 살며, 서로 다른 환경에 서 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져 갔다. 다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아주 자연스럽게 저절로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묻던 안부가 한 달에 한번 육 개월 한번, 일 년에 한 번, 그리고 그저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잘 살고 있구나를 확인하는 관계가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어떠한 원망이 있거나 미움이 생겼거나, 서로에게 큰 상처를 준 그런 드라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는 지금 내 자리에서 걷고 뛰고 하다 보니, 한때 같은 방향을 걷다 마주친 우리는 이제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다른 방향으로 그렇게 걷고 뛰고 하게 되었다.
그러는 중에 지금 내가 걸어가는 그 길 위에서 우연히 같은 방향으로 가는 인연을 만나게 되면 다시 그들과 함께 걸어가면 되고, 언젠간 또 갈림길에서 헤어질 수도 있다는 그런 마음으로 최근 사람을 만나고 있다. 일본에서의 그 만남은 사실, 한국에서만큼 크게 마음이 이어지지 않는다. 같은 언어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각자의 마음속에 언젠간 떠날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은 걸까? 그래서 그렇게 우연히 만난 그들과 가벼운 관계를 맺고자, 또 더불어 인관관계에서 오는 실망감을 줄이고자 가벼운 관계를 맺자 하고 나 스스로 그렇게 결정했다.
그런데도, 그렇게 마음을 먹었음에도, 그리고 또 그런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음에도, 참 관계 속에서도 나는 결국 실망하는 감정의 요동을 겪고 있다. 잘 통한다고 생각한 친구는 만나는 내내 자기 이야기하는데 바빴고, 한번 내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그녀의 이야기의 집중도만큼이나 내 이야기를 그다지 듣고 싶지 않아 했고, 재빠르게 주제를 변경하는 모습, 그 찰나의 모습을 보고, 친구와 헤어져 집에 오는 그 길에 어쩐지 드는 헛헛함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찰나 순간을 경험하고 친구와 있는 내내 얼른 친구와 헤어져 집에 가서 차라리 내방 시원한 에어컨 아래 내가 좋아하는 유튜브를 보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들었다.
또 어떤 날은 약속 당일 사과 한마디 없이 약속을 취소당하는 일도 겪었다. 일요일 만나자고만 했고 만날 역은 정했지만, 몇 시에 보자고는 하지 않았다. 오전에 급한 일이 있다고 오후에 보자고 했고, 결국 오후 내내 연락이 없었다. 그러고는 오후 6시에 오늘 만나지 못할 거 같다며 다음에 보자 하는 문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여기서 친구를 보고 안 보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쩐지 자기 시간만큼 내 시간을 소중히 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하루 종일 언제 볼지 모르는 약속 때문에 내 시간은 제약이 생겼고, 어쨌든 오후에 보자 해서 그 쯤해서 나갈 채비를 다 했는데, 오늘은 못 볼 거 같다는 메시지와 함께 부끄럽다는 모습의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왜 본인의 시간만큼 타인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실망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최소한 사과의 한마디와 최소한의 변명, 예를 들면 정말 약속을 지키고자 했지만 어떠한 급한 일 때문에 오늘 약속을 못 지킬 것 같다는 문자를 보냈다면 그리 화가 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리 실망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나도 살면서 그렇게 약속을 파기한 적이 있기에. 뭐 그 정도쯤 이해 못 할까. 이런 실망감이 드는 스스로의 마음에 유치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나를 전혀 배려 없는, 내 시간에 대한 배려가 없이, “오늘은 못 만날 거 같아, 다음 주에 보자” 하는 말이 '아,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망감. 뭐 만나지 그리 오래된 사이도 아니라, 특별하게 내가 그 친구와 감정을 주고받은 사이가 아니라, 사이를 끊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근데 어쩐지 괜히 모든 게 피곤해졌다.
외로운 마음도 들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좋지만, 그렇다고 외로운 마음을 아예 없앨 수는 없었다. 외롭단 생각이 들 적이면 다행히도 새로운 인연이 내게 왔다. 운이 좋았다. 그렇게 새로운 인연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면 가벼운 관계를 맺으리라 생각하면서도 앞서 경험했던,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과 왠지 모를 헛헛함, 그리고 하나의 행동에 따른 실망감은 결국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다다르게 했다. 그렇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유난히 이번 여름은 그랬다. 많은 감정들이 오고 갔다.
혼자서도 잘 지내는 성장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외로운 마음이 따라왔고, 그러다 누군가와 어울리다 보면,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기에, 가벼운 만남을 이어가지만, 또 타인으로부터 피곤함이 자꾸 밀려왔다.
여러 감정이 오고 가는, 아직도 미숙한 내 감정의 통제 속에 내가 성장한 것은 하나 있다.
부러운 감정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게는 놀라운 변화이다. 뭐랄까. 그냥 지금의 내 속도대로 나는 나만의 속도대로 걸어가는 연습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 남의 속도와 나의 속도에 대한 비교를 이제는 덜 하게 되었고, 이는 내게 부러운 감정을 없애주었다. 오롯이 나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다 보니, 예를 들면 예전에는 가끔씩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고 있는 누군가를 보며 부러워하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상대방의 안정이 크게 내게는 감흥이 생기지 않게 되었다. 그냥 그렇구나. 저 사람의 인생은 저렇구나 하는 마음.
여러 감정이 오고 가는 여름이다. 올여름은 진짜 어느 해 보다 무더위가 극성이다. 내 감정도 극성이긴 했다. 즐거웠다, 흥미로웠다. 실망했다, 외로웠다. 헛헛했다. 등의 여러 감정 오고 간 여름. 그래도 내게 이 여름을 잘 이겨내가고 있는 건 아마도 부러움의 감정이 내 마음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조금은 성장한 여름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내길에 집중하다 보면, 어제 하기로 한 일을 못한 나에 화가 나지,
내가 가지지 못한, 상대방의 가진 것에 대한 부러운 마음은 사그라진다.
처음으로 든 감정이다. 어찌 보면 나는 아주 조금은 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