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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a May 22. 2017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때라는 것은 없다는 걸 그녀는 이야기해주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녀를 만났던 때는 어학연수 시절이었다.

나는 이미 어학연수 3개월 차를 넘어선 시기였고, 조금은 타지 생활에 익숙해진, 그리고 반 친구들과도 조금 친해진, 그런 상태였다. 그런 무렵 메구미는 우리 반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일본인이었고, 첫인상은 고지식해 보였다. 직장을 다니다 그만두고 런던으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숫기 없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웬 오지랖이 발생했는지, 마치 3달 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알 수 없는 동질감이 발생 했는지 그녀의 친구가 되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처음 그녀가 자신의 스토리를 담담하게 털어놓았을 때 그게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는 못했다.. 일본의 한 대학 행정실에서 10여 년 정도 일을 하다 왔는데, 학교에 교환 학생이 점점 늘어 외국인 학생들을 접하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그래서 영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하던 일을 그만두고 모아둔 돈으로 런던까지 오게 되었다고 하였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에게 오랜 사회생활을 하다 일을 관두고 다른 나라로 연수를 떠나 일이 그리 대단한 일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저 그럴 수 있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어쩜 그냥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는 기쁨이 더 컸는지 모르겠다.


얼추 당시 그녀의 나이가 된 지금 와 생각해보니, 난 심지어 일을 그만두고 겨우 일주일 정도 해외여행을 가는 것에도 손을 바들바들 떨고 있으니 당시 그녀에게는 굉장히 큰 도전이고 모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끊길 듯 끊기지 않은 채 지속되었다. 한국음식을 좋아했던 그녀였기에 그녀는 여러 번 서울방문을 했었다. 물론 당시 함께 어울렸던 친구들 역시도 가끔 일본을 가면 그녀를 만나 곤 하면서 인연에 끈은 계속되었다.



<2013년 10월 어느 날>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생겨었다. 한 며칠간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순간 일본에 사는 친구 메구미가 생각이 났다. 갑작스럽게 2박 3일 정도 신세 져도 되냐는 나의 부탁에 선뜻 자기가 살고 있는 집에 한 방을 내주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주저 없이 그녀가 살고 있는 오이타라는 도시로 향했다. 후쿠오카에서 기차 타고 1시간여쯤 가면 메구미가 살고 있는 오이타라는 도시가 나온다. 작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큰 빌딩도 보이지 않았고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며칠간 나의 돌출구가 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그런데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바로 메구미였다. 영어 연수를 마친 후, 국제대학 행정실에 다시 취직을 했다고 하였다. 원래 하던 그녀의 자리로 돌아간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평소에 주얼리마스터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했다. 그냥 어찌하다 보니 그 기회를 잡지 못했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게 되어 그 꿈을 잠시 접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한 주얼리 브랜드의 백화점 매장에서 샵마스터 일을 새로 시작했단다. 자신의 현재 매니저는 자기보다 어린 친구였으며, 대학 갓 졸업한 친구들 사이에서 말단부터 업무를 배우고 있다는 그녀.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한다. 작은 도시의 백화점에서 새내기부터 시작하는 일이지만 언젠가는 도쿄 본사로 이동해 가는 꿈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하는 일이 궁금해 하루는 아침 출근하는 그녀를 따라 나섰다.. 그녀와 마주 앉아 출근하는 메구미를 바라보았다. 언제나처럼 우직해 보이고 항상 예의 바른 느낌의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어쩌면 메구미는 내가 모르는 어떠한 면모를 가진 강한 여자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16년 10월 어느 날>

급하게 도쿄 여행을 준비했다. 짧은 휴가를 이용해서 어디든 떠나고 싶었다. 제일 만만한 게 일본이었다. 2시간이면 도착하니 짧은 휴가를 이보다 더 잘 즐길 수 있는 해외 여행지는 없을 것이다.


메구미와 나는 종종 페이스북으로 소식을 주고받았었다. 도쿄로 지점을 옮겨 일하고 있다는 그녀의 소식이 궁금했다. 도쿄 여행 도착 후 이틀째, 그녀가 일하고 있는 신주쿠에 한 백화점 1층에서 보기로 했다. 3년 만에 만난 그녀는 어딘지 모르게 변해 있었다. 보이는 겉모습이 예전보다 훨씬 세련된 것은 물론 이거니와 한층 밝아진 얼굴 덕택에 색다르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걸으며,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또 맥주를 마시며 3년간 해묵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오이타의 한 백화점에서 열심히 일한 덕에 기회가 생겨 도쿄 지점으로 오게 되었단다. 한동안은 샵마스터가 아닌 도쿄 본사에서 행정 업무를 봤었는데 사람들을 마주 하며 일을 하는 게 더 즐거워 다시 백화점으로 옮겨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 사이에 매니저가 되었고, 특히 도쿄에서 그것도 꽤나 유명한 백화점에서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은 고단하기는 하나 즐겁다고 한다.


그녀가 차고 있는 그녀를 닮은 작지만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들이 눈에 띄었다. 그녀와 꼭 어울렸다. 3년간의 메구미의 삶의 여정이 이야기를 듣지 않고도 느껴질 수가 있었다.

사실 나이를 물어보는 게 실례인지라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어렴풋이 나이를 듣고 그 이후에 물어본 적이 없었다. 결혼을 안 하고 있었던 그녀에게 하물며 결혼은 언제 하냐는 질문도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쩐지 밝아 보이는 모습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역시나 도쿄로 온 이후에 남자 친구가 생겼다고 한다. 곧 결혼을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 그러나 결혼을 하게 된 후 아기를 갖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녀는 삶의 어느 시점을 인정 하고, 과감하게 포기 해야 하는 것은 버릴 줄 아는 삶을 살고 있었다. 조금은 융통성이 없어 보였던 그녀의 10년 전 첫인상을 나는 기억한다. 언제나 단정하고 다부진 표정의 그녀였다. 일탈이란 걸 해본 적이 있을까 하는 느낌을 주곤 했다. 언제나 차분하고 과하지 않은 그녀가 나는 항상 좋았었다.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손카드를 보내오는 그녀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였기에 우리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락이 끊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늘 정도가 지나치지 않은 메구미는 어쩜 그 차분함 속에서 누구보다 과감하게 도전을 하며 살아오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정숙한 그녀의 행실과 인상 덕에 아마 그녀와 도전 혹은 변화라는 단어를 매칭 시키지 못했던 듯싶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어쩜 나에게 지속적으로  한가지를 알려주고 있었던 거 아닐까 하는.



때라는 것은 없다는 걸


그녀는 그렇게 정도를 걸으며, 과하지는 않지만 끊임없는 도전을 해오고 있고 그걸 실행하고 있었다.

3년 후 혹은 10년 후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면 그녀는 또 어떻게 변해 있을까. 그녀의 삶을 저 멀리서 조심스럽게 응원 하며, 지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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