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nda Jun 01. 2017

관계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관계 - 사전적 의미

파생어 :  관계하다,  관계되다
1.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가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음. 또는 그런 관련. [비슷한 말] 계관 1(係關).

서운한 마음이 생기는 게 관계인가 보다. 

화창한 어느 주말, 만나자는 연락이 없는 그에게 먼저 뭐 하고 있냐는 메시지를 보냈다. 몇 시간이 지나도 답이 없다. SNS를 끊던지 해야지, 피드가 온통 나들이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다. 사진들을 쭉 훑어보고 있고 있노라니 '다들 날씨가 좋으니 어디론가 놀러 갔네' 하는 생각이 들면서, 화가 점점 더 났다. 섭섭한 감정은 두 배가 되었다. 순간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5시간 뒤, 답이 왔다.


"하루 종일 아파서 기절해 있었어.."


머릿속으로 막장 드라마 한 편을 쓰며 별의별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는데 나도 모르게 아프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휴, 오해였구나.' 하는 안심의 내뱉음. 아파서 하루 종일 기절해 있었다는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참, 아팠다는데 나는 뭐가 그리 좋아 웃음이 나는 건지.. 늘 상 아주 사소한 것에 괜스레 우울해지기도 하고 실망하고 서운한 감정이 생기는 것이 '관계'라는 틀 속에서 오는 마음의 씨앗인데, 또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금방 스르르 풀리는 것 역시도 그 속에서 생기는 마음인가 보다. 속상했었다는 표현도 못한 채,


" 아파서 어떻게,, 약 잘 챙겨 먹어"


하고 위로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래도 하루 종일 핸드폰만 쳐다보며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답답하고 짜증남에 생각이 복잡해졌었는데 다리는 뻗고 잘 수 있겠다. 


'약은 잘 챙겨 먹었나.. 그래,, 아팠으니 연락이 없던 거였지.. 이유 없이 그럴 리가 있나. 바보같이 난 그것도 모르고 불평만 했네.'


다시 한번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다.


<2014.12월.. 유럽 여행>

지혜와 나는 참 다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사이지만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전히 친구이며 동시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늘 상 제일 먼저 떠올리게 하는 여행 동지이기도 하다. 현재 그런 그녀와 유럽 여행을 하고 있다.


여행 가기 전부터 의견이 참 많이도 엇갈렸다. 숙소는 시내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어도 특별해야 한다는 나와 머무는 곳은 무조건 교통이 편한 곳 혹은 시내 중심가와 가까운 곳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그녀. 

엄청난 혈투(?) 끝에 결국 겨우 서로가 반반 납득할 수 있는 그런 곳으로 협의점을 찾았다.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서 의논하다가 "하나 둘 셋 하고 서로 원하는 걸 외쳐보자" 할 때 항상 다른 걸 이야기하는 상황에 어이없는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그래도 함께 하며 나누며 느끼며 즐기는 즐거움에 비록 밥 한 끼 정하는데도 치열한 논쟁이 있을지언정 항상 그녀를 여행 파트너로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치열한 논쟁 끝에 결정한 숙소, 파리의 에어비앤비>
<커피를 마셔도 취향이 참 다른 우리>


그런데 그런 날이 있었다.

'나는 이만큼 널 위해서 양보하는데 너는 왜 내가 배려하는 부분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서운함이 갑자기 쌓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게 먹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포기했었고, 나는 이곳을 가고 싶은데 네가 원하는 곳으로만 간 거만 같은, 왠지 모르게 나만 양보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건 오롯이 내 입장에서만 생각한 버전이다. 뭐든 양쪽 상황을 들어 봐야 한다. 그녀 역시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반짝거리는 에펠탑을 등에 지고, 세느강변이 흐르는 낭만적인 퐁네프다리 그 위에서 소리치며 싸우기 시작했다 (우리는 런던-파리-암스테르담을 여행하고 있었다.)


별거 아닌 거 가지고 순간적으로 드는 억울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한 감정이 차곡차곡 쌓아 올리다 결국 누가 더 목소리 크나 대결이나 하듯이 마음속에 있는 불만스러움을 다 털어냈다. 그러고 나니 후련한 기분도 들었고 또 한편으론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구나'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하는 생각에 미안함이 들기도 했다. 함께 택시를 탔다. 5분간의 정적 끝에 그녀를 슬쩍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숙소 근처 가서 맥주나 마시자"


하는 그녀의 한마디에 조금 남아있었던 꿍했던 모든 감정이 모두 사라 진다.


관계, 두 사람 이상이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음.

이것이 사전에 나오는 첫 번째 정의이다. 어쩜 서로 관련이 있다는 것은 단순히 엮여 있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가 없다면 아마 그 서운함과 그리고 서운함이 풀리는 일도 없겠지.. 그 관계가 더 깊을수록 아마 작은 것에 더욱 집착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며, 작은 말 한마디에 또 금세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아닐까..

수많은 관계 속에 나는 얽히고 섞여 살아간다.. 혹시 나는 내가 깊숙이 관계해 있는 그 누군가에게 작은 서운한 마음의 씨앗을 키우게 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참 가끔은 복잡하고 어렵다. 그런데 또 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 좋기에 그 관계를 포기하지 못하는 가 보다. 오늘도 난 아마 서운함과 안도감을 여러 번 반복 하며 지내게 될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무수히 많은 관계 속에 얽혀 지내며 말이다.





이전 05화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