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내가 현재의 나를 구차하게 만들고 있었다.
"드르륵"
쉴세 없이 카톡이 울린다. 뭔가 하고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이전 직장 동료들과의 단체 카톡방에서 나는 울림이었다. 여전히 전 직장을 다니고 있는 누군가도 있었고, 이미 이직을 한 누군가도 있었다. 이런 우리들의 고민은 언제나 '직장'과 '일'이었다. 하루에 반 이상을 차지하는, 인정하기 싫지만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을 통해서 조금 더 만족감을 느낄 수는 없을까, 하는 갈망에서 시작된 고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Work & Balance'를 외치며 이직에 성공한 누군가도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으며 여전히 다니고 있는 누군가는 같은 문제로 변함없이 머리를 쥐어 싸며 언제쯤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져있다.
쉴 틈 없이 바쁠 때는 조금 쉬고 싶다는 불평으로, 일이 너무 없을 때는 자기 발전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푸념으로, 능력 없는 직장 상사 때문에 모든 일을 떠 넘겨받는 것 같은 짜증으로, 일 중독 상사로 인해 매번 야근을 밥 먹듯이 해야 한다는 불만으로 우리들의 채팅방은 쉴 틈이 없다. 좀 더 회사생활을 즐겁게 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은 우리의 욕심인 걸까.
<2016년 2월 뉴욕>
꿈에만 그리던 뉴욕여행 오게 되었다. 20대부터 40대 여자라면 다들 알 것이다. 한 티비채널에서 한동안 재방에 삼방에 끊임없이 틀어주던 미국 드라마 "Sexand the city". 봐도 봐도 질리지 않고, 티비채널 돌리다가 "아니 또 재방을 하는 거야" 하며 볼멘소리 하면서도 심지어 다음 장면이 무엇인지 다 알면서도 채널 고정하며 보게 되는 드라마이다. 그저 드라마 일 뿐이지만 때론 감정 이입해 가며 주인공들에게 공감하기도 하고 그들의 삶을 선망에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성공한 3040 싱글 여성의 삶에 대한 로망을 가지게 해주었고 또한 미국이라는 나라가 아닌 뉴욕이라는 도시 자체에 대해서 환상을 갖게 해 주었다. 덕택에 내게도 "뉴욕"이라는 곳은 이름 들어도 설렘을 주는 도시가 되었다. 선망 대상 혹은 로망이라는 단어가 적합하겠다. 워너비 같은 그런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꼭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위시리스트를 이제야 이루게 되었다.
숙소는 에버비앤비를 통해서 예약했다. 숙소를 처음 도착했을 때 나를 반겨 준 것은 스페인 커플이었다. 항상 누군가를 맞이하고 떠나보내는 것이 익숙했던지 마치 나를 잘 알고 있었던 사람 마냥 맞이해 주었다.
그들은 5년 전에 스페인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다고 했다. 집을 둘러보았다. 예전에는 공장이었던 곳을 집으로 개조해서 만든 건물이었기에 층고가 매우 높았다. 그들도 막 멕시코 여행 후 돌아왔다고 했는데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일주일간 나의 친구 혹은 가족이 되어줄 그들과의 첫 만남. 한집에 같이 사니 임시 가족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래서인지 그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어떤 일상을 살아가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episode 1>
내가 보기엔 지금도 충분히 잡지책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예쁜 집인데 두 사람은 언제나 인테리어 구상으로 분주하다. 때때론 내게 탁자 위치를 조금 바꿔 보았는데 괜찮은지, 테이블 위에 놓인 잡지책을 다른 책으로 변경해보았는데 어떤지 의견을 묻곤 했다. 구석구석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에 정성을 들여 스스로 꾸며 놓은 공간이기에 그들 눈에는 작은 변화도 달라 보이나 보다. 넓은 거실과 세 개의 방으로 구성된 이 곳은 한 개의 방은 호스트 커플을 위한, 또 다른 두 방은 나와 같은 게스트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방 말고 다른 하나는 현재 손님을 받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새롭게 인테리어를 하기 위해 서란다.
관광을 마치고 집으로 일찍 돌아온 어느 날이었다. 빈방에서 이 커플이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는 것이 들려왔다. 무얼 하고 있는지 궁금해 방으로 가 보았다. 새로 방 인테리어를 위해 이케아에서 가구며 몇 가지 소품들을 사 왔다고 한다. 새로 구입한 가구들을 조립하고 리폼을 하고 있는 남자 마늉 (호스트는 정확히 스페인 여자와 그녀의 여동생, 즉 두 자매가 하는 것이었고 그녀의 남자 친구가 마늉이다)과 액자 몇 개들을 어디다 둘까 고민하는 호스트 루시아가 보인다. 며칠 전부터 거실에 앉아 인터넷 검색해가며 둘이서 부산스럽게 무언가를 의논하는 게 보였는데 어떻게 방을 꾸밀까 의논했던 것이었다. 그들은 프리랜서 인테리어 디자이너였지만, 부업으로 이렇게 에어비앤비도 운영하고 있었다. 뉴욕에서도 일을 하고 있지만 필요하면 가끔 스페인에 가서도 일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굳이 한 도시에 머물며 일을 하기보다는 본인들이 필요로 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던 것이었다. 멕시코에 갔던 이유는 그곳에서도 집을 새로이 임대했고 또 다른 에어비앤비를 운영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녀가 말하길 멕시코와 지금 집에 있는 대부분의 가구들과 물건들은 이케아와 같은 곳에서 저렴하게 사서 혹은 길가에 버려진 물건들을 가져다 페인트로 덧칠과 리스칠 등을 통해 새롭게 재탄생시켰다고 했다. 어쩐지 집안 곳곳의 소품들이며 가구들 하나하나 어디서 본 적 없는 듯한 특유의 멋을 지니고 있었다. 순간 그녀의 재능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나는 편견에 사로 잡혀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언가 고정적인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 그녀에게 물어봤다.
"재능이 너무 좋다. 뉴욕에서 가구를 리폼하는 가게를 내는 건 어때?
"이웃 주민을 위해서 가구를 리폼하는 일을 하고 싶긴 해.. 근데 돈을 벌기 위한 목적보다 재능기부를 해볼까 생각 중이야. Homeless 같은 사람들에게 가구 리폼하는 교육을 해주고 이를 통해 그들이 직접 이 일로 생계를 꾸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 같은 거.. 당장 시작은 못하더라도 언젠가 그런 자선 사업을 하는 게 꿈이야"
내 질문이 자체가 부끄러워져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일을 한다는 건 돈과 연결되어있어야 하고 무슨 일이든 고정적이고 안정적이어야 한다는 편견을 갖고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마늉 역시도 6개월 정도 아프리카 오지에서 살았었는데 그곳 주민들을 위한 집짓기 재능기부였다고 한다. 인터넷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6개월 동안 생활하는 거 자체가 매우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뜻깊은 일이었다며 내게 그곳 있는 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정말 그의 표현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건축 뼈대와 함께 간 동행 몇몇 들을 제외 하고는,,, 두 번 다시 가고 싶지는 않다는 솔직한 고백과 더불어 그렇다고 후회는 없다고 한다.
< episode 2>
아침의 시작. 내가 나갈 준비를 모두 마치고 거실로 나오면 그들도 새로운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
항상 내게 물어보는 첫마디,
"오늘은 어디 갈 거야? 오늘 계획은 뭐야?"
와 같은 매우 일상적인 질문. 내가 그날의 계획을 이야기하면 그곳에 가면 무엇을 해야 하고, 맛집은 어디인지 등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 해주곤 한다. 또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오면 오늘은 어디를 갔다 왔는지 본인들은 오늘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 말해주며 내 친구가 되어 주었다. 혼자 여행을 하던 중이기에 가끔 친구가 그리웠는데 매일 그렇게 내 일과를 물어봐 주고, 가야하는 곳을 추천해주면서 구글 지도를 펼쳐 놓고 나보다 더 열심히 관광코스를 짜주는 덕에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비록 일주일 동안 머무는 집이지만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 집에 왔구나. 집에 돌아왔네' 하는 편안함마저 들었다.
어떤 날은 함께 와인을 마시며 밤새 담소를 나누었다. 여행지에서 흔히 느끼는 이질감 혹은 이방인이라는 감정 없이 이 곳에 소속된 일부처럼 느껴졌다. 에어비앤비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그들. 사실 그들도 비록 5년 전에 이곳에 왔지만 미국이라는 곳은 여전히 그들에게 이방에 어떤 곳일 것이다. 일을 위해 스페인-멕시코-미국을 오가기도 하고 일이 없을 때는 2개월 혹은 3개월씩 아시아 지역을 돌며 여행하는 여행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였는지 자신들이 집에 머무 동안 게스트들이 자기 집처럼 안락하게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들의 공간에 머무는 여행자들에게 일상의 친구가 되어 주며..
'우연히 발견한 이 공간, 참으로 난 운이 좋았다. 그들과 인연을 맺고 친구가 되었다는 것.. '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 아마 매우 열정적이겠지, 매일매일 목표가 뚜렷하겠지, 아마 10년 후에 계획도 모두 짜여 있을 것이야 하는 생각 혹은 추측을 해왔다. 그런데 문득 그들을 보니 좋아하는 일은 한다는 건 아마 엄청난 열정 혹은 철두철미한 계획을 가진 채 일을 한다기 보다는 그저 하루하루를 즐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즐긴다는 말 자체도 참 지겹도록 들어온 말이긴 하다. 어딜 가나 무언가 강요 받는 듯한 문구가 있다. '즐겨라'라는 말도 그 문장 중에 하나 일거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지겹게 여겨 지기도 했다. 아주 시니컬 한 마음으로 대체 어떻게 즐기란 거야 하고.
그런데 즐긴다는 건 어쩜 노력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들에게도 고민은 존재할 것이다. 항상 매일이 행복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그저 그들은 지금 주어진 걸 하고 있었고, 그 일을 바탕으로 의미 있는 무언가를 꿈꾸는 듯 했다.
좋아하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 그저 평범한 하루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리고 작은 일부터 발전시키는 것.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있는 미래가, 현재 여기 있는 나를 구차하게 만들고 있다.
-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중, 저자 마스다 미리
혹시 모를 노후를 위해서 연금 적금도 들어놔야 하고, 누군가가 될지 모르니 일단 결혼하려면 떳떳한 직업도 있어야 하고, 미래에 무슨일 일지는 모르지만 혹시 닥칠 상황에 대비해 두어야 하는데 등등 저기 확실하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서 그저 쳇바퀴 도는 듯한 지금이 싫지만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현재를 위해 버티는 것이 아니고 올지 말지 모르는 저 앞 날을 위해서 버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당장 현실의 굴레에 벗어나 일탈을 하기는 어렵다. 어렵다기 보다는 솔직한 표현으로는 자신이 없다. 영화에서나 본직 한 뉴욕에서 만난 그들처럼 자유롭게 일을 하며 일이 없을 때는 2개월이 든 3개월이든 여행을 다니는 삶을 당장 실현시키며 살 용기가 나는 아직 부족하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일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나씩 해보기로 했다. 좋아하는 일이 생계를 책임지게 되는 순간 그 일이 싫어 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뉴욕 여행 후 최소한 좋아하는 일들을 시작은 해보기로 했다. 이렇게글을 쓰는 일처럼...!
**참고: 에어비앤비의 장단점은 있는 거 같습니다. 사실 제가 일본 도쿄에서 묵었던 에어비앤비는 제게 정말 좋지 못한 경험을 해주게 해주었거든요. 그 일 때문에 최근에는 여행을 하면서 에어비앤비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요. 하지만 뉴욕에서 만난 호스트들 만큼은 정말 좋은 기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혹시나 여행 시 에어비앤비 참고하시는 분들도 있지 있을 까해서 안 좋았던 경험도 있었음을 이야기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