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를 받고 싶었다.
어느 날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은 걸까.."
"왜 특별하지 않은 소소한 글들을 좋아하는 걸까.."
어쩜 위로가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은 아무에게도 못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괴롭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한다. 어쩐지 괜히 찌질해 보이기도 하고, 궁상맞아 보일까봐서.
툭 터놓고 고민을 친한 친구에게 털어 놓을 때도 있다. 그런데 뱉는 순간 '아차' 하는 후회가 함께 밀려 온다. 그 말은 하지 말걸 그랬나, 그래 그건 오버였어... 하며... 또 그렇게 모든 내 속마음을 내비칠 정도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없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렇다. 어쩜 후자가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서 같은 상황을 공감해 줄 친구가 점점 줄어 들었다.
솔직한 대화를 위해서, 혹은 한없이 공감해 줄 대화 상대를 찾기 위해서.. 특별한 삶을 보면서 선망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저 잠시 일뿐 소소하고 평범한 삶을 보며 동질감을 느끼고 위로를 받는다. 어쩜 인생이란 다 같은 길위에서 걸으며 고민하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일본의 만화가이자 작가인 마스다 미리의 만화책들을 참 좋아한다. 그녀의 책들에는 "20대에 해야 할 일들/30대가 가기전 꼭 이루어야 할 것들/40대에 놓치면 안 되는 것들"과 같은 조언들을 담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드라마틱한 극적인 상황도 자수성가한 부자들의 성공비결도 담고 있지도 않다. 내 마음을 들켰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일상적이고 내가 매일 겪고 느끼는 비슷한 작은 걱정거리들을 담고 있다. 작은 걱정거리라고 언급해 보지만, 그 작은 것들이 내 삶에 들어올 경우 작게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매우 큰 근심으로 다가온다. 두껍지 않은 이 만화책들을 읽다가 몇 장을 남기지 않게 될 때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마치 말이 잘 통하는 누군가와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이제 그만 헤어져야 하는 시간과 같은 느낌이다. 나는 아무 말을 하진 않지만 그녀의 책을 읽다 보면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든다.
선물은 말이지~
서른 다섯살이나 되면 원하는게 별로 없단다.
대출은 있지만, 집도 샀고, 애인은 원하지만 아무나 만나고 싶은건 아니고,
내가 산타클로스에게 받고 싶은 것은,
음....
"보장"
일지도, 어떤 의미에선 뭔가 메마른 얘기네.
---------------------------------------------
더이상, 사랑을 할일도 없다.
길거리에서 뒤돌아봐 주는 사람도 없다.
아이가 어느정도 자라면 일을 하려고 생각했지만
그때가 되고 보니 이미 일을 찾을 수 없게 되었고,
일도 집안일에 지장이 없는 범위라고 정해져 있어서 만약 일을 한다고 해도 가족이 고마워할 것도 아니다.
억지로 일을 나가지 않아도 되니깐 행복한 거라고 모두들 말한다.
그런말을 들으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나는 내 자신이 희미해 져가는 기분이 들었다.
계속 희미해지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중, 저자 마스다 미리
물론 성공스토리나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때때론 '그래, 나도 열심히 좀 살자' 하며 동기부여를 얻곤 한다. 하지만 공감이 가고 소소한 글들에 울림이 더 크게 남는다. 어쩜 '에효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하는 위안을 얻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또 말하고 난 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있어 보이기 위해 말을 꾸미며 허세를 부릴 필요도 없다.
가끔 쓰기도 한다.
일기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써내려가다 보면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와 같은 느낌을 주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읽기도 하지만 동시에 써보기로 시작했다.
위로받고 위로하기 위해서.
사람은 무엇을 글로 쓸까요? 왜 쓰는지는 여러 가지로 대답할 수 있지만 무엇을 쓰는지는 답이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내면에 지닌 생각과 감정을 글로 씁니다. 당연한 말이죠? 글쓰기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문자로 표현하는 작업입니다. 내게 없는 것을 만들어 쓰지는 못합니다.
- 표현의 기술 중, 저자 유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