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선택의 연속 속에 살고 있다.
노인: 영감을 준 여인보다 그 글을 더 사랑하다니.. 그게 내 비극이었어. 나를 위해 한 가지 해주겠나?
로리: 뭐든지요.
노인: 돌아보지 말고 가던 길 가게. 누구나 선택을 해야 해. 그게 삶이야. 그리고 그 짐을 지고 사는 게 힘든 거야. 하지만 그걸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어서 가게.
- 영화 더 스토리: 세상에 숨겨진 사랑 (The Words, 2012) 중,
나는 어렸을 적 서른이 훨씬 넘는 나이가 되면 모든 게 안정적으로 변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그때 서른이 훌쩍 넘는 그쯤이 어떤 나이인지 잘 가늠하지는 못했지만 엄마를 보며 엄마 나이쯤 되는 어른이 되면 모든 게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때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나, 엄마가 매우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누군가와 통화하는 걸 엿들은 적이 있었다. 엄마는 통화를 하면서 언성을 조금 높이기도 했고, 이따금씩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엄마의 모습이었다. 어린 마음에 엄마가 저렇게 눈물을 흘릴 정도면 굉장히 큰일이 생겼을 거야 하고 생각했었다. 통화를 마치는 소리를 듣자마자 엄마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는데 그냥 친구들과 오해가 생겨 다툼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별일이 아니어서 참 다행히다'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상황이 신기하고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엄마와 같은 어른이 되면 친구들 사이에 다툼도 없고 그냥 서로를 이해하며 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그저 내 또래 여중생들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순수한 생각이었다.
중학생 때가 몇 년 전인지 손으로 셀 수 없는 나이쯤, 서른이 넘어가는 그 시점이 되어서야 어른이 돼도 친구들과 다투기도 하고 누군가의 말과 행동에 상처도 받으며 무언가를 늘 갈구하는 중학교 시절 그 감성을 평생 품고 살아 감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엄마 역시도 50살, 60살, 그리고 70살이 되어도 모든 게 안정적일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역시도 여전히 불안정하고 또한 10년이 지난다 해도 내가 지금 가지는 이 마음이 변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 속에서 살고 있다. 아주 작은 단안에도 가끔은 불안해질 때가 있다. 이게 정말 옳은 결정일까 하는 두려운 마음. 미래를 볼 수 있는 로봇이라도 발명된다면 선택할 때마다 미래를 확인하고 결정하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하니 사실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잘한 선택일까?
영화 "The words" (원제의 영화 제목이 더 와 닿아 원제 영화 제목으로 언급합니다)에서 주인공인 작가 로리는 신혼여행 중 파리에서 산 오래된 가방에서 원고를 하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원고에 매료되어 단어 하나, 심지어 오타까지도 똑같이 빼껴 쓰고 이 작가 미상의 글을 마치 자신이 쓴 것처럼 출판사에 제출한다. 결국 책으로 출판되었고 큰 성공까지 거머쥔다. 어느 날 한 노인이 그를 찾아온다. 그는 그 원고를 쓴 작가였다. 로리를 찾아온 노인은 그 글을 쓰게 된 배경과 왜 그 원고를 잃어버리게 되었는지, 원고를 잃어버린 후 삶의 변화와 최근 우연히 읽게 된 베스트셀러 책이 그의 글이란 걸 로리에게 알려 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로리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노인이 그에게 전한 한마디. 모든 삶의 선택은 자신이 결정하고 그 선택에 대한 고통도 짐도 모두 자신이 가져가는 거라고.
<2014년 12월>
아무리 표를 뒤져봐도 연말 파리와 런던으로 직행하는 비행기표를 찾을 수가 없었다. 파리인 파리아웃, 파리인 런던 아웃, 런던인 런던아웃, 런던인 파리아웃 등등 온갖 방법을 굴려가며 뒤져봤다. 물론 비행기표 값을 2배 더 내면 표를 구할 수는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항공편에 많은 돈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마침내 내린 결론은 암스테르담 인 앤 아웃이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런던 혹은 파리 둘 중 한 도시는 포기해야 했다. 원래 계획은 내가 가고 싶은 파리와 지혜가 가고 싶은 런던 두 곳을 모두 가는 것이었지만 8일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세 개의 도시를 가는 건 무리라고 생각이 들었다. 지혜와 합의점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아무리 양보해야지, 양보해야지 마음을 비우려 해도 도저히 양보가 되지가 않았다. 물론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지혜도 머리로는 '그래 런던을 포기 하자'하고 마음을 가다듬다가도 뒤돌아서면 포기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한판 크게 싸우기도 했다. 네가 좀 양보하면 안 되냐며. 결국 합의점 따위는 찾지 못했다. 8일 동안 암스테르담-파리-런던 세 곳 모두 가자가 우리의 결론이었다.
찍는 여행을 하는 건 정말 싫고 한 도시를 음미하고 싶다고 늘 상 생각해왔는데 어쩔 수 없었다. 세 곳을 가기로 결정했고 지체 없이 비행기표며 숙소며 기차 티켓까지 모두 예약을 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완료했지만 마음은 영 불편했다. 과연 이 추운 날씨에 무거운 캐리어 가방 끌고 계속해서 도시 저 도시를 헤맬 수 있을 까. 이렇게 짧게 짧게 여행하다가 이도 저도 아닌 여행은 되지 않을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인 데도 불구하고 여행 전 날까지 잘한 결정인가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여행은 시작되었다.
우리가 8일 동안 세 도시를 돌아다니며 만든 여정은 내 생각과는 달리 매우 재미있는 여행이 되었다. 한 도시에 감성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는 기회비용은 포기해야 했지만, 그리고 때론 한 도시에서 평균 2박 3일 정도로만 머물러야 했기에 예를 들면, 10개의 관광 스폿 중 7개는 포기하고 3개의 선택만 해야 했고, 그 3개의 스폿을 결정하기까지 수많은 의견 충돌로 인해 격렬한 싸움을 감수해야 했지만 그래도 나름 참 흥미로운 여정이었다.
특히 예상외로 가장 즐거웠던 건 바로 기차였다. 도시를 옮길 때마다 기차를 이용했다. 기차를 올라타자마자 우리는 좌석에 짐을 놓고 기차 끝 칸에 위치한 식당칸으로 이동했다. 식당 바에서 맥주 한 캔씩 사들고 달리는 기차 안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며 마시는 그 맥주의 맛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때론 우리 둘 뿐 일 때도 있었고, 한 번은 기차 안이 가득 차 입석으로 가는 사람들로 식당 칸까지 북적이기도 했다. 좌석 요금까지 지불하고 내내 서서 가는 우리의 모습이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곳에서 맛보는 맥주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가던 기차가 중간에 벨기에에서 정차하는 바람에 2시간 정도 브뤼셀 역에서 다음 기차를 기다려야 했다. 눈 오는 브뤼셀. 역 밖으로 기어이나가 캐리어 끌고 근처 펍으로 가 맥주 한잔을 또 마셨다. 이번 여행은 브뤼셀까지 4 도시를 돌았다며 서로 자축하며.
짧게 짧게 머물러야 했기 때문에 사실 밥하나 먹을 때도 매우 신중해야 했다. 허투루 한 끼를 날려 보내면 또 이 도시 이 여행에서 식사 한 끼를 메워 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 가는 그 길, 장소 하나 하나는 하나를 포기하고 선택한 그 무언가였기에 엄청난 고민 끝에 채택한 결과물인 셈이었다. 결국 8일 동안의 여행은 둘이서 한순간 한순간 치열한 논의로 결정하여 만들어낸 여정이었던 것이었다.
여기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 속의 황금시대.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까.
-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2011) 중
대학을 졸업했다, 직장에 취직을 했다, 결혼을 했다, 아이가 생기고, 그리고 아이가 이제 모두 커서 부모의 손이 필요 없게 되었다 등등 편안함이라고 일컫는 시점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의 삶을 '이제는 모든 게 안정적이겠다.' 하고 단정 지을 수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매 순간 끊임없는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걸어온 길이 내가 택한 선택 연속 속에서 만들어진 삶이란 걸 알기에 앞으로 놓일 수많은 선택 속에서 안정적인 삶을 단언할 수는 없게 되었다.
선택의 연속 인 현재의 삶에서 안정적이길 바라는 건, 특히 어른이 되면 그럴 거야 하면서 어른이 되기를 기다리는 우리들의 크리스마스 소망 같은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