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평균 올려치기'에 대하여
유튜브를 켜자 '물 2L 마시기 절대 하면 안 되는 이유'라고 적힌 썸네일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다들 물 2L씩 마시라고 하는데 왜 2L씩 마시지 말라고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영상을 눌렀다. 31분 4초나 되는 긴 호흡의 이 영상은 태초먹거리학교 설립자 이계호 교수님의 인문학 강연이었다. 무엇에 홀린 듯 나는 이 영상을 쭉 보았고, 결국 끝까지 다 보았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한 챕터를 정리해 보았다.
꼴찌 다람쥐의 최선
우리나라 산에 가장 많은 나무는 소나무다. 예전에는 땔감으로 나무를 사용하느라 산에 나무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식목일 때마다 온 국민이 나무를 열심히 심었었다. 하여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나무가 많이 자란 나라가 우리나라다. 소나무 다음으로 참나무가 많다. 참나무로는 표고버섯도 키우고 숯도 만드는데, 이 나무가 바로 도토리나무다. 그런데, 우리는 소나무만 열심히 심었지, 도토리나무는 심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많을까?
도토리나무는 자연친화적인 나무라고 한다. 그 해 논밭에 흉년이 들어서 동물들이 모두 굶어 죽을 것 같으면 그 해에는 도토리가 많이 열린다. 반면, 그 해 논밭에 풍년이 들면 도토리가 적게 열린다. 도토리는 벼 이삭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 올해가 풍년인지, 흉년인지를 안다. 즉, 식물과 식물은 냄새를 가지고 서로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도토리가 열리면 다람쥐들이 도토리를 따서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를 하는데, 다람쥐들은 욕심이 많아서 많은 도토리를 여기저기에 숨겨 둔다. 그런데, 다람쥐들이 머리가 나빠서 10개를 숨겨 놓으면 1개밖에 찾지 못한다. 다람쥐들이 찾지 못한 그 도토리 9개 중에서 싹이 나, 아무도 나무를 심지 않는 깊은 산 중에서도 참나무가 자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도토리나무 즉, 떡갈나무가 많은 이유다. 즉, 다람쥐가 멍청한 덕분이라는 것이다.
다람쥐가 찾지 못했던 도토리에서 싹이 트려면 도토리가 땅 속 깊이 있는 흙과 접촉되어야만 한다. 그에 맞게 다람쥐가 도토리를 숨길 때 자세가 진지하다고 한다. 바보 다람쥐들은 도토리를 숨길 때 짧고 작은 발로 낙엽을 한 장, 한 장 다 들어서 땅 속 깊은 곳에 도토리를 하나, 하나 집어넣는 최선을 다한다.
산이 산답고 푸르른 이유가 뭘까, 꼴찌 다람쥐가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꼴찌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꼴찌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꼴찌도 어떻게든 패배자가 되지 않으려고 무리한다. 꼴찌는 꼴찌로 살면 될 텐데, 꼴찌가 무리하게 사는 삶을 살면서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꼴찌에게 필요한 것은 최고가 아니라 최선이다. 중간한테도, 최고한테도 최선은 필요하다.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 때, 꼴찌와 중간과 최고가 더불어서 사는 사회, 가장 건강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
도토리나무에 담긴 교수님의 인문학적 통찰은 우리가 왜 인문학을 가까이하고 살아야 하는지 몸소 느끼게 해 주었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없다. 그 모든 존재들에게 필요한 것은 최고가 아니라, 최선이다. 나도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빛이 나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다람쥐를 좌절시키는 사회
요즘 '평균 올려치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 유튜브 영상을 많이 접했다. 말 그대로 평균은 평균 이어야 하는데, 그 평균이 올려치기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평균적인 삶'의 조건은 집은 한채 정도 있고, 연봉은 대기업 직장인 정도로 받아야 하고, 학벌은 어느 라인까지 되어야 하고, 부모님 노후 준비도 탄탄하게 되어 있어야 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조건들이 많더라.
하지만,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려면 상위 n% 안에는 들어야 하는데, 이는 전혀 평균적이고 평범한 숫자가 아닐 것이다. 즉, 실제로 다수를 차지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위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며 살고 있지 않다. 그런데 왜 SNS를 보면 나만 빼고 모두 다 잘 살고 있는 것 같지?라는 생각이 든다.
나만 빼고 모두 다 잘 살고 있는 것 같은 이유는,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보여줄게 많기에 자신이 가진 많은 것들을 SNS에 마음껏 전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평균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은데도 그러한 삶을 살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거짓으로 SNS에 전시하는 사람들도 많다. 정말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일상 중 가장 행복한 순간만을 전시하기 때문에 SNS 안에서는 평균 이상의 삶, 평균의 삶, 평균 이하의 삶 모두 그 이상이 되어 그것이 표준이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평범한 삶은 우리가 쉽게 확인할 수 없는 곳으로 점점 사라지고 있고, 그 이상의 삶만을 보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렇게 평균이 높아지니, 평균인 사람들은 자신이 평균 이하로 도태되었다고 생각하고, 평균 이하였던 사람들은 좌절감만 더 깊게 느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학업과 취업,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지금 우리는 다람쥐들이 최선을 다하기도 전에, 좌절시키는 사회에 살고 있다.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으며 평범한, 평균의 삶을 살고 있었던 다람쥐들은 자신도 모른 채 평균 이하로 도태되어 있었고, 그것을 인지하게 된 그들은 대부분 좌절에 빠지기 마련이다.
개인이 자신의 SNS에 자유롭게 본인의 인생을 보여주는 것을 제재할 수는 없다. 그리고 본인의 행복했던 순간을 SNS에 전시하는 것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평균 이상의 삶을 사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고 다양한 삶을 간접 체험할 수도 있는 등 장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점은 얻되, 좌절감, 박탈감은 느끼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그 자체로 빛나고 소중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즉, 본인이 요즘 시대가 말하는 평균적인, 평범한 인생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담담히 인정하고 그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만치 높아진 평균보다 부족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다람쥐와 같은 꼴찌라는 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꼴찌 다람쥐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하루하루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수행하며 살아가면 된다는 것이다. 나 또한 남과 비교하지 않는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모든 사람이 SNS에 전시하는 것처럼 행복하기만 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행복한 모습의 이면에는 각자의 고민, 흐림이 있다. 그러니 그들도 나와 다름없다는 것을 주지하고 나는 나의 갈 길을 가면 된다. 산이 산답고 푸르게 만들어주는 꼴찌 다람쥐처럼 우리는 우리 각자의 존재 이유가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살려고 하지 말고, '나'의 인생을 살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에 대해 생각해 본 것을 간단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20대에는 취업, 30대에는 결혼, 40대에는 성공, 50대에는 안정' 이렇게 짜인 틀과 각본이 존재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것이 우리 사회와 그 구성원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저 틀과 각본이 '평균 올려치기'에서 '평균'을 담당하고 있다. '애초에 틀과 각본이라는 평균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과 같은 생각이 스치듯 들었다. 따라서, 이 평균에서 조금 너그러워지고 여유롭게 생각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옛 어른들 말 틀린 거 하나 없다'라고 이 루트가 나쁜 것만은 아니고 틀렸다는 것도 아니다. 이 틀을 지키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백수, 노처녀, 노총각, 루저 등 프레임을 씌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소중한 각자의 인생에 응원은커녕 앞뒤 사정도 모르고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의 인생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