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변화하는 것을 두고 누가 탓할 수 있겠냐마는 이곳은 변해도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 버렸다. 60년말 까지는 동백섬을 가운데 놓고 오른쪽은 수영 해수욕장이 왼쪽에는 해운대 해수욕장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두 해수욕장 모두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우리 또래의 세대에게는 추억이 많이 깃들어 있는곳이다. 어제 고등학교 시절 가깝게 지냈던 친구들끼리 오랜만의 만남이 부산에서 있었다. 일정에 따라 해운대 들렸다가 여기에서 일박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몇 번 이곳을 스쳐 지나가기는 했지만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돌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 사람들은 특별한 외지 손님을 안내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산에 잘 올라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부산 사람들도 개인적으로 해운대는 잘 찾아가지 않는다. 여기는 순전히 외지인들이 차지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오늘은 외지인 자격으로 해운대를 방문하게 되었다. 오늘 돌아본 이곳은 그 사이에 다녀본 미국의 유명한 Virginia Beach나 Florida의 여느 대형 비치보다 더 화려하게 현대적 모습으로 변모해 있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있던 사이에 여기도 세계 초 일류의 휴양지로 변신을 한 것이다. 쉴거리, 먹거리, 볼거리에다 잠 잘 자리도 충분하고 만족스러웠다.
이 곳 해수욕장과 동백섬은 아직도 기억 속에 아련히 떠오르는 학창 시절 추억이 몇 가지 남아 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부산의 중고등학교는 여름방학을 대략 일주일 정도 앞두고 이틀 정도 학생들에게 해양훈련을 시켰다. 수업을 전폐하고 도시락을 싸들고 해수욕장으로 바로 등교를 한 후 하루 종일 물속에서 지내다 오는 현장 학습이다. 중2 해양 훈련을 받았을 때이다. 자취 시절 부실한 도시락을 싸 가지고 가서 먹기는 먹었지만 물속에서 오랫동안 체력을 소모한 탓에 오후에는 엄청난 허기가 몰려왔다. 당시 부산 교육대 앞에 살고 있었었데 호주머니 속에는 달랑 두 번 갈아타고 돌어갈 버스비 밖에 다른 여유돈이 전혀 없었다. 몇 번을 망설이다 몰려온 배고픔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몇 푼 안 되는 돈을 입속에 집어넣고 말았다. 돌아갈 차비를 탕진해 버렸기 때문에 해양 훈련이 끝나자 바로 수영천을 따라 교대 앞 까지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마 15km가 넘는 거리라 집에 도착하니 밤 9시가 훨씬 넘어서 있었다. 3시간 이상을 꼬박 걸어온 것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무리 철없는 어린 나이 때였지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였던 것 같다.
60년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바로 3.15 총선이 있었다. 이 선거는 연이어 4.19 학생 운동의 계기가 되었고 이 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게 된 일명 3.15 부정 선거다. 3.15 선거 며칠 전이였다. 학교에 등교를 하니 교장 선생님이 직접 나서서 전교생을 운동장에 집결시키고 있었다. 동래 명륜동에 있었던 학교를 출발하여 동래 중심 시가지를 거쳐 해운대로 향하여 국도를 따라서 영문도 모르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날 아침 부산 지역에 선거 유세를 하기 위해 서울서 수영 공항을 통해 내려오는 이승만 대통령을 길거리 환영을 하기 위해 우리가 동원된 것이다. 걸어가는 도중 학생들에게 손에 드는 조그만 태극기를 나누어 주었다. 비 포장 흙먼지 길을 우리는 쉬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수영 비행장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당도했을 무렵 드디어 대통령이 탄 자동차가 곧 지나갈 것이라고 하였다. 대통령이 탄 차가 지나갈 때는 손에 든 태극기를 힘차게 흔들며 크게 환호성을 질려라고 사전 연습까지 시켰다. 얼마 후 검은색 지프차를 선두로 차량 대여섯 대가 붉은 황토 먼지를 잔뜩 일으키며 쏜살같이 다가왔다. 함성은 고사하고 태극기를 흔들 틈 조차도 주지 않고 전속으로 지나쳐 가버리고 말았다. "에이 씨*, 이게 뭐야?" 우리 모두가 입에 잔뜩 들어간 흙먼지를 뻗어 내며 쌍욕을 솓아놓기 시작했다. 학교로 다시 돌아가는데만 꼬박 3시간이 걸렸다. 그 어린 나이에 하루 종일 엉터리 정치행사에 동원된 꼴이 된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권력자들의 무지한 아부성 횡포였다. 철 모르는 학생들에게 가한 직접 고문이었다. 그렇게 했으니까 바로 그 해 이승만 정권은 붕괴되고 많은 권력자들의 목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그러므로 4.19를 주도한 학생들은 민주화 역사상 참으로 위대했었다. 황량했던 수영천 하구의 버려진 땅을 센텀 시티로 변신시키고 설렁하기만 했던 해운대 해수욕장을 세계적인 휴양지로 만든 우리 국민 건설역군들도 위대했었다.
그렇다면 당시에 나도 학생이었고 그 후로는 건설의 한 주역이었으니까 나도 위대한 축에 속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