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 경덕 Dec 15. 2020

고향 모교

고향 초등학교

선산 이장 작업을 하기 위해 어제 고향에 내려갔다.
이장에 필요한 구비 서류를 준비하려고 면사무소에 들렸더니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하여 길 건너 반대편에 있는 초등학교, 옛날에는 국민학교에 올라갔다.

6년간 아침저녁 열심히 들락거리다가 1959년 이 학교를 떠났다.
여기를 떠난 지가 햇수로 60년 벌써 회갑이 지나갔다.
그동안 몇 번 지나치기는 했지만 이렇게 여유로운 마음으로
모교를 둘러보기는 처음이다.


옛날에는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교정에서 매일 아침마다 조례가 있었다.
듣기 싫어서  나도 모르게 귀를 막았다가 담임 선생님께 혼이난 교장 선생님의 판에 박힌 지루한 훈시는
지금도  매일 아침 아내의 입을 통해 계속 듣고 있다
조례가 끝나고 나면 북소리에 맞춰 우리는 교가를 목청껏 부르면서 각자의 교실로 향해 대열을 맞추어 걸어 들어갔다.
교장 선생님의 훈시가 평소보다 길어진 날은 반감의 표시로
엇 박자 목소리를 허공을 향해 더 크게 내 지르면서,,,,,,

" 앞으로 김해평야
   바라다보며
   등 뒤에 뻗어 내린
   백두산 줄기
   조석으로 변하는
   맑은 낙동강
   그위에 우뚝 솟은
   우리 대동교"

기억을 더듬어  보니 교가의 가사 내용이 참으로 단순하다.
그러면서도 내심 정감이 새롭게 느껴진다.

우리가 39회니까 이 학교의 개교 역사는 백 년이나 되었다.
일제 시대에 개교를 했기 때문에 일본풍이 배어있었던 중앙의 본관과 좌우로 마주 보고 있던 동관과 서관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대신 본관 뒷자리에 4층 콘크리트 건물 한동만 을씨년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꼭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나려고 나갔는데 한복을 입고
나올 줄 알았던 친구가 어울리지도 않게 양장을 하고 나와 앉아있는 그런 느낌이다.
찬찬히 살펴보니 나무 두 그루가 내 눈에 들어온다.
하나는 고목 티를 잔뜩 풍기는 벚나무다.
당시 서관 교실 서쪽에 여러 그루 심어져 있었다.
사변 직후라 누가 훔쳐갔는지 아니면 부서졌는지  서관 교실에는 창문틀이 하나도 남아 있지를 않았다.
대신 원두막 같은 곳에 사용하는 거적때기로 창틀을 대신하여 막아 놓았다.
사월 초가 되면 서관을 둘러싸고 있는 벚나무에 벗 꽃이  만개한다.
김해 벌판의 벌들이 이곳으로 모두 다 모여드는 것 같았다.
막대기로 바쳐 놓은 거적때기 창가 넘으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하면 꽃잎에 가려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수천 마리의 벌 때가 좋은 꽃을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하듯이
웅웅 거리며 달려든다.
"선생님,  벌 소리 때문에 선생님 말씀이 잘 안 들립니다"
"그러몬 거적때기 내리라"
"선생님, 칠판에 글이 안 보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만개한 사꾸라꽃(당시는 모두 사꾸라라고 했다)을 배경으로 벌과 함께 특별 수업을 받았다.
이 백년된 벚나무 한 그루가 남아서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또 하나는 향나무다.
본관 국기 게양대 좌우로 여러 그루 있었는데  개교 때 심었다는 나무다
"국기에 대해 경례!"
소싯적 고신파 소속 개신교 교회를 다녀서 국기에 대한
경례가 우상숭배라는 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경례를 거부하다 수 차례나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계속 경례를 거부하니까 한 번은 교감 선생님께서 불러 놓고
서는 나더러 회초리를 직접 만들어 오라고 하셨다.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무슨 나무로 회초리를 만들어야 맞을 때 손바닥이 덜 아프고
쉽게 부러지는 지를, 적당한 크기의 마른 벚나무 가지를 가지고 갔더니 교감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때리지는 않으시고 대신 나를 설득시키기 시작하셨다.
무슨 말에 글복당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나는 그만 쉽게  설득당하고 말았다.
그 대신 나는 다른 방법을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라는 구호가 떨어지면 나는 국기 대신 게양대 양쪽에 있는 향나무를 향해 경례를 할 것이라고.
"하나님, 저 우상 숭배 안 했습니다"
참으로 돌이켜 보면 스스로도 웃음이 나오는 소싯적의
추억이다.
여기에 그때 주인공이었던 벚나무와 향나무가 아직도 살아남아서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2018,12.1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