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새골에도 봄이 왔습니다

by 김 경덕

모새골의 봄

여기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골'짜기입니다.
줄여서 모새골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여기에 봄이 왔습니다.
숫처녀의 가슴에 찾아온 봄은 부끄러움 때문인지 눈으로 볼 수가 없다지만 모새골에 찾아온 봄은 부끄러움이 전혀 없나 봅니다. 있는 그대로 모습을 전부 다 보여줍니다.
지금 여기에는 남이 보던 말던 연분홍 치마로 단장한 진달래가 햇빛을 등지고서는 속살을 마냥 다 드러내 놓고 있습니다.
이에 질 세라 한술 더 뜬 붉은 목련이 지금 막 마지막 남은

옷마저 마저 벗어던지고 앙가슴을 드러내려 하고 있네요.

보는 사람이 더 민망할 정도입니다.
돌계단에 수줍게 얼굴을 내민 제비꽃만이 모새골 구성원답게 조용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네요.

50대 중반부터 이 골짜기에 들락거리기 시작하였는데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합니다.
초창기 시절 어느 해 봄날 건너편에 자락에 핀 산 목련을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그만 이곳 봄 풍경에 홀딱 반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매년 이때가 되면 흰 글씨로 쓴 초청장이 날아옵니다.

만나자는 유혹이 어찌나 강한지 뿌리치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너무 정이 들까 봐 가까이서 만나지 않기로 굳게 다짐을 하고 매년 찾아왔답니다. 그런데 바로 다 다음 해에 그만 그 작심이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인근 땅 경계 확인차 능선을 따라 내려오다 그만 나도 모르게 보지 말아야 할 추한 꼴을 보고 말았습니다.

꽃이 거의 다 떨어진 끝물 때였나 봅니다.

멀리서만 바라볼 때와는 전혀 다른 아주 추하고 지저분한 목련의 모습을 그만 바로 눈 앞에서 보고 말았습니다.

그날 그 자리에서 주워 온 화두가 바로 오늘날까지 모새골 공동생활에서 지키고자 애쓰는 "불가근불가원"입니다.
앞산 자락에 목련꽃만 두고 하는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모든 것을 새롭게 하자고 모인 이 공동체 생활에서 항상 적용시키고 싶은 화두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의 실천이 왜 그리 어렵고 힘이 드는지요?
불가에서 말하는 보리심을 더 키워고 와야 하나요?

아니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나요?

꽃구경 나왔다가 엉뚱 한 길로 그만 빠져버렸네요.
모새골 꽃구경 다시 한번 더 해 보세요.
모새골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기독교 영성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저는 모새골 목공실을 지키는 지킴이입니다.
여기 방문하실 기회가 있으시면 목공실에도 꼭 한번 들려주세요.

2021, 3, 31

모새골에 핀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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