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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경덕 Sep 11. 2021

선과 선

선과 선

혼자만의 삶은 점이다.

반대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은

연으로 이어지는 선이다.

선이 무한대로 길어지면 원이 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원을

형상화시켜  둥글게 둥글게 살아가기를 좋아한다. 이렇게 더불어 살아가기를 좋아하는 우리들의 삶을 코로나 19가 엄청 시샘을 하였나 보다.

더불어 삶의 기본은 만남인데 그 자체를 봉쇄해 버린지가 벌써 일 년 하고도 10개월 차다.  

펜데믹 이후의 일상은 누구나 점, 점, 점으로 징검다리처럼 이어져 왔다.   코로나 19에 억눌린 우리 모두의 삶은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고달프기 지 없다.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잊히는 하루하루의 일상사가 이제는 보편화된 듯 감각마저도 무디어져 버렸다.


무더위도 물러가고 늦장마도 한풀 기세가 꺾인 틈을 타서 다시 일탈을 감행하였다.  

코로나 예방수칙과 적당히 타협한 일탈이었다.

가을비가 내린 뒤끝이라서 그런지

가을 하늘이 모처럼 환하고 높다.


오대산 월정사 초입에 얼마 전 개관을 한 "오대산 자연 명상 마을" 이 있다. 숙박을 겸한 불교풍 명상 시설로 여기서는 투숙객을 위한 명상 수련 프로그램이 새벽과 저녁 매일 두 차례 열린다. 사실 이곳은 이름이 마을이지 시설 자체는 3성급 호텔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름을 붙인 숙소동은 숲 속에 적당한 간격을 두고 배치되어 있고 레스토랑은 별채로 제법 멀리 떨어져 있다. 숙박비에 아침저녁 식사가 포함되어있는데 여기서 제공하는 음식은 육류와 주류는 물론 심지어 차와 커피까지도 배제된 완전 사찰 음식이다.


숙소 내에서는 금연은 물론 음료수 외에는 어떠한 음식도 먹거나 마실 수 없다. 위반 시에는 25만 원 벌금을

부과한다는 경고문이 벽에 붙어있다.


이번 여행은 불심이 깊은 70년 지기 죽마고우 부부를 따라 이곳에 들어왔다.

아쉽게도 저녁 명상 강좌는 코로나 때문에 개최하지 못하고 문을 닫아 버렸다.

저녁은 담백한 사찰음식으로 약간 포식을 하였는데도 돌아서기가 무섭게  뭔가가 허전하고 부족함이 금방 느껴졌다.

아쉬움을 안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올려다 바라보니 서양 하늘빛이 예사롭지가 않다. 미송나무로 마감을 한 숙소 외벽의 선마저도 예사롭지가 않게 보인다.

잘 정돈된 침대와 흰색의 눈부신

침구의 반듯함도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창가에는 별실처럼 따로

구분하여 창밖의 숲이나 산을 바라보며 명상을 할 수 있게끔 2인용 방석을 얌전하게 준비해 놓았다.

앉아 있기만 하여도 금방 불자의 원 보리심이 발원할 것 같다.


커튼을 올려놓고 가만히 정좌해 보았다.

더불어 삶이란 꼭 누구를 만나지 않더라도 누릴 수가 있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떠나옴도 새로운 만남을 위함이요,

새로운 체험도 귀한 만남이다.

평소의 관행을 자제함도 귀한 만남인 것 같다.

솔향을 품은 솔바람도 언어가 되어

그 속에 들려오는 물소리, 새소리, 푸른 하늘의 구름 소리까지도 경으로 들리는 것 같다.

불경이 따로 없어도 될 것 같다.

자연이 그대로 완벽한 불경인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만 모아도 읽기가 벅찬데 눈을 감고 보니 팔만대장경보다 더 많은 경들이 연이어 머릿속에 몰려온다.

부끄러워진다.

차라리 눈을 뜨고 평상심으로 되돌아가서 바라보자.

그동안  떨어져 있었던 점들만이라도 하나씩 구슬 꿰듯이 주워 모아

선으로 만들어 보자.


무엇보다 먼저 남과의 관계보다는 자신과의 관계를 반듯하게 세우면서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가라고 한다.

자신도 모르게 지난날에 받았던

그리고  숨겨놓았던 상처들을 모두 펼쳐놓고 화해부터 하라고 한다.

그런 다음 둥글게 둥글게 선을 벗어나지 말고 죽는 그날까지 조금씩 변신하면서 살라고 한다.


"수보리 자여, 세상의 모든 만물은

독립적인 것은 없고 '상호의존적'이다.  또한 만물은 변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앓고 끝없이 변화한다.'  여기에서부터 제법무아와 제행 무아가 시작되느니라"




2021, 9, 8

    오대산 명상 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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