暗香(암향)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이번에는 먼 강남을 다녀왔다.
전 가족이 오미크론 감염으로 낙인이 찍혀 이웃과 만남 자체가 쑥스럽게 느껴질 때였다.
친구 부부의 강남 매화 탐방길 동행 요청이 반갑게 날아왔다. 친구는 매년 3월 중순이면 매화의 암향을 찾아 남으로 내려간다. 금년에는 산청 3매를 보러 간다고 하였다. 제의를 받고 흔쾌히 함께 동행하기로 하였다.
작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매화 탐방 기행이다.
사군자 중에 매화가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기품이 있는 꽃인 줄로만 평소에 알고 있었다.
섬진강 다압면의 매실농원은 청매로 전국에 소문이 나 있다. 몇 차례 찾아가 꽃구경도 하고 매실 상품도 시식하였건만 별다른 감흥은 남지 않았다.
작년에 호남의 남도 5매를 직접 만나본 후부터 매화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매화에 관련된 글이나 문헌도 관심 있게 보며 틈틈이 메모도 해 두었다.
이번에 찾아간 산청에는 은둔 생활을 하던 중 다시 봄이 되어 피어난 매화를 바라보며 남명 曹植 선생이 쓴 詩가 있었다. 선생의 외로움과 처연함을 잘 나타낸 시이다.
"한 해 저물어 홀로 서 있기 어려운데
새벽부터 날 샐 때까지 눈이 내렸구나
선비 집 오래도록 외롭고 가난했는데
네(매화)가 돌아와서 다시 조촐하게 되었구나"
선생이 심었다는 "남명매"가 산천재 뜰에 은은한 암향을 발하고 있었다.
이번에 두 번째로 친근한 산청 3매 중 하나다.
시인이요 독립운동가였던 이 육사의
"광야" 란 시에 이런 귀절도 있다.
-중략-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가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시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라
독립운동을 하다 투옥되어 중국 감옥에서 옥사한 육사의 처절한 절규가 매화 속에도 묻어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파지기도 하였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매화의 암향을 제대로 맡아보았다.
암향을 제대로 맡고 느껴보려면 정중동하고 매화 앞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멈춘 후 조용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기다려야 한다. 바람과 소리에 따라 매화 향의 농도가 달라진다. 첫 향은 아무래도 진하고 주변 다른 향과 섞여있어 암향이 되지 못한다.
첫 향이 지나간 후 잠시 기다리면 다시 은은하게 풍겨오는 아주 옅은 순수한 향이 있다.
이것이 바로 암향이다.
옛 선비들은 귀로도 암향을 들을 수 있다고 하였지만 아직까지 그런 경지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이번에 맞 본 암향 중 가장 마음속에 남는 향은 남사 예담촌에 있는 원정매 향이다. 시간도 알맞은 오전 11시경 높은 돌담 속에 둘러싸여 있어 잡향이 번접할 여지가 별로 없었다. 뜰 안의 바람도 잔잔해서 진한 향만 맡을 수 있었다. 한참 기다렸다가 혹시나 하고 손바닥을 천천히 꽃 앞으로 휘 저였더니 진한 향 뒤에 따라오는 기막힌 옅은 암향이 온 뇌리로 파고 들어왔다.
귀중한 첫 경험이라 하도 소중하여 일행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암향은 꽃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꽃을 대면하는 사람의 마음 가짐에 따라서도 확연히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옛 선비들은 겨울에도 굳은 기개로 꽃을 피게 하여 베어나는 매화의 암향을 사랑하였다.
매화는 여러 종류의 별칭들이 있다. 다른 꽃보다 제일 먼저 꽃이 핀다 해서 꽃 중의 형 즉 화형(花兄)이라고도 하고 꽃 중의 괴수라 해서 화괴(花魁)라고도 하였다.
피는 시기에 따라 早梅, 冬매, 寒매, 雪中매, 黃매로 불려졌고
또 꽃잎의 색깔에 따라 白매, 紅매, 黑매, 綠매 등으로 불려지기도 하였다.
매화의 원산지는 중국 쓰촨 성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당나라 때 전해진 것으로 추증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 중 하나인 강희안의 조부 강희백이 지리산 단속사지에 심은 정당매는 670년 가까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본 산청 3 매다.
백매원(百梅園)도 경북 성주에 있다.
김굉필의 외증손이자 퇴계의 제자인 한강 정구가 자기의 고향인 성주에 조성한 "회연당"이다.
귀갓길에 여기까지 둘러보고 왔는데
"많은 것은 천하다"는 매화4귀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만발한 백 그루의 매화꽃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살풍경 중에 대화상차란 말이 있다.
꽃을 특히 봄 꽃을 보고 차를 나누면 꼴볼견이라는 말이다. 매화꽃 앞에서는 아무래도 겨우내 잘 삭은 곡차가 어울릴 것 같다.
단원 김 홍도는 멋지게 꽃이 핀 희귀한 매화나무를 보고 이 나무를 사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나무 주인이 무려 3000량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를 안타깝게 느낀 돈 많은 한 선비가 이 매화를 보고 그림을 그려주는 대가로 3천 량을 선 듯 대신 지불하여 주었다.
단원은 나무값으로 2천 량을 지불하고 8백 량은 술을 받아 함께 돈을 지불한 선비와 마셨다는 멋진 일화가 있다.
종일 친근한 매화향이 코뿐 아니라 눈과 귓속에도 계속 남아있다.
석양 무렵에 지리산 바래봉 아래서 동행한 친구 부부와 부담 없이 나누는 곡차가 너무나 화 하다.
해가 들수록 자꾸만 움츠려 드는 늙은이의 허한 기를 금년 봄에는 매화의 암향이 몇 배나 되살려 주는 것 같았다.
'고맙습니다.'
산청 3 매님들,
원정매, 정방매, 남명매
다시 불러봅니다.
내년에도 다시 만나 뵈올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2022, 3,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