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 경덕 Jun 29. 2023

광장시장




   광장시장

70년대 초반이다.

복학 후 뒤떨어진 학업 따라잡기와 아르바이트로 고달픈 나날이 지속될 때다.  당시는 먹거리 특히 단백질이 섭취가 부족하여 하숙생들은 먹어도 먹어도 항상 허기가 졌다. 잇몸에 피가 자주 나서 치과에 갔더니 치과의사가 기막힌 처방전을 내려 주셨다.

하숙생인 줄 확인하서는 인근 재래시장에 있는 난전 식당에 가서 순대와 돼지 뼈다귀 감자탕을 자주 사 먹으라고 하셨다. 당시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영양부족으로 인해 생긴 잇몸 괴혈병이었다.

그래서 자주 찾아간 곳이 종로 4가에 있는 광장 시장 순대 골목이다. 당시에는 순대와 빈대떡이 주류였다.

지금은 각종 K-food로 한국에 여행온 외국인들이 더 많이 찾아가는 명소가 되어있다.


지금의 아내와 우여곡절 끝에 테이트를 막 시작하였을 때다. 호주머니 돈은 부족하고 허기는 지고 체면 불고하고 얌전한 여학생을 데리고 무작정 여기를 찾아갔다.

사람들이 북적되는 노점 죄판에 털썩 앉으니 깜짝 놀란

아내는 창피하다고 도망을 가 버렸다. 데이트보다는 내 허기진 뱃속을 채우는 일이 더 급한 시절이었다.

그래도 이 배고픈 촌놈이 불쌍하였던지 바로 가지 않고 근처에 있는 전봇대 뒤에 서서 기다려 주었다.

당시의 머리 고기와 은 순대 한 접시와 막걸리 한 잔은 나에게는 어떤 보약보다도 값어치가 있었다.

일주일 지탱시켜 주는 생명양식이었다. 만약 그때 아내가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면 지금과 같은 치욕스러운 역사가 쓰이지도 않았을 터인데... 아쉽기도 하지만.

뒷날 아내가 내가 그곳에 가게 된 자초지종을 듣고서는 무척 미안해했다.


어제 아내와 함께 인근에 있는 병원으로 종합검진 예약을 하려 갔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지척에 있는 광장시장이 생각이 나서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동안 몇 번 지나친 적은 있지만 아내와 함께 찾기는 50년이라는 세윌이 어느덧 흘러 버렸다.

굉장히 많이 변해 있었다.

그 사이 이곳은 연일 인산인해로 완전히 서울의

명소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좌판만은 옛날 그대로였다.

한 접시 시켜놓고 술잔을 드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내가 지난날 함께 자리하지 못한  자신의 불찰을 사과하는 의미에서 음식값까지 대신 치러주니 더욱 기분이 좋다.

Thank you for paying.

  And

Food Alley of Gwang-jang market,

forever!


   2023, 6, 28

작가의 이전글 고목의 심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