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투(1)
동물들의 결투는 자신의 생존 본능을 위한 행동이다.
사람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는 없는 것 같다.
그 방법만 다른 동물보다 더 지능적이고 다양할 뿐이다.
비록 철없던 어린 시절이었지만 직접적인 결투를 벌인 적이
두어 번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50가구 미만인 시골의 작은 마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시절에는
같은 또래가 무려 열 명이나 한마을에 살았다.
또래끼리는 알게 모르게 누가 누구를 이긴다는 서열이 정해져 있었다.
본인이 싫어해도 손위의 형들이 등하굣길에 재미 삼아 일부러 대결을 시켜
순위를 정해 주곤 했다.
이웃집에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하나 더 있는 동갑내기 **가 있었다.
이 친구에게는 얼굴이 살짝 곰보로 성질과 욕심이 남들과는 유별난
3년 차 위의 형이 한 명 있었다.
동생이 나한테 진다는 사실을 알고는 등굣길에 심심하면 싸움을 붙였다.
당시 꼬마들의 싸움은 먼저 코피가 터지거나 밑에 깔려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면 결투에서 지는 것으로 판가름을 했다.
나의 특기는 아시바리, 일본 말로 다리 걸기,를 한 후 상대 목 조르기였다.
내가 위에서 목을 감고 조르면 어김없이 이 친구 형이 슬그머니 다가와서 발로
내 등을 밟아 버리거나 밀어내 버리는 것이었다.
어린 마음에 싸울 때마다 이렇게 부당하게 당하는 것이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하교 시에 다리 목에서 이 친구를 기다렸다가 아침보다 더 심하게
보복을 하곤 했다. 이런 일이 반복해서 일어났다.
이럴 때마다 매번 지켜보기만 했지 나서지 못했던 두 살 위의 사촌 형이
어느 날 나를 집 뒤로 조용히 불러내었다.
고심 끝에 나의 트레이딩 코치로 자청하고 나선 것이었다.
형이 가르쳐 준 방법은 아주 간단하고 단순했다.
결투를 할 때 절대로 엉켜 붇지 말고 손으로만 가격하라는 것이다.
먼저 손바닥에 침을 바르는 척하며 상대를 혼란시킨 뒤 손에 힘을 빼고 바로
얼굴을 만지듯이 가격하라는 것이었다.
특히 먼저 눈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라고 하였다.
그러고서는 나에게 직접 시범을 보여 주었다.
내가 주먹을 불끈 쥐며 공격 자세를 미처 잡기도 전에 순식간에 형의 손바닥이
내 눈으로 날아왔다.
눈 근처를 살짝 가격 당했는데 눈에 별이 번쩍거리면서 앞이 잘 보이지가 않았다.
만약 진짜로 싸울 때 이렇게만 된다면 앞을 잘 볼 수 없는 상대를 마음먹은 데로
공격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며칠간 이 방법을 열심히 반복 연습하여 복수의 칼날을 세워 놓았다.
얼마 후 더디어 결전의 기회가 왔다.
손바닥에 침을 바르자마자 순식간에 상대의 얼굴을 연타로 주물려 주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던지 상대는 우왕좌왕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이때다 싶어 손바닥에 연이어 침을 발라 상대방의 얼굴을 마음 놓고
따귀를 때리듯이 가격을 하였다.
등치 큰 이 친구의 형이 미쳐 개입하기도 전에 게임은 끝나고 말았다.
정말 오랜만에 맛본 시원한 한판승이었다.
문제는 그날 저녁에 벌어졌다.
모든 식구가 저녁을 막 먹기 시작할 즈음 이 친구의 어머니가 얼굴이 퉁퉁
부어올라서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이 친구를 데리고 항의 차 우리 집에 찾아온
것이었다.
이 집 아들이 자기 아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아이들 싸움이 어른들 싸움으로 번진 꼴이 되고 말았다.
전후좌우를 따지다 보니 집안끼리의 싸움이 되어 버렸다.
험악한 말이 오고 가던 어른들 싸움도 얼마 후 일단락되어 끝을 내었다.
이 일이 일어난 후에 계속되던 우리들의 결투는 영원히 종지부를 찍었다.
지금은 Pilot를 하다 은퇴 후 외국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는 나의 멋쟁이
코치 사촌 형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형의 도움으로 초등학교 시절 우리들 생존 결투를 이렇게 끝낼 수가 있었다.
상대적 우위를 지키려고 소싯적부터 힘든 생존 결투를 해오면서 오늘날까지
용하게 잘도 살아남아 왔다.
2019년 6월 25일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