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아내가 가출했다.
보따리를 싸고 몸이 나간 게 아니고 마음이 나갔다.
한 지붕살이 한지 어느덧 50년이 넘어가니 사랑도 퇴색되어 물 그림자처럼 흐물거린다.
어느 때부터 시들 시들해지더니 이제는 존재감마저 낮아지고 미미해져 버렸다. 그러더니 다른 곳에 슬쩍 뿌리를 내려 버렸다. 다행히도 그곳은 꽃이다.
아내는 꽃을 좋아한다.
좋아함이 깊어지면 사랑이 되나 보다.
탓할 수도 없다. 젊은 시절에는 아내의 생일날이나 결혼 기념일 되면 그래도 잊지 않고 꽃바구니를 챙겨 주었는데 이제는 이 역할마저도 딸 녀석에게 빼앗겨 버렸다.
하전한 마음을 달래려면 아내를 따라다녀야 한다.
몇 해 전부터 계절을 따라 꽃을 찾아다녔다.
3윌이면 남도 매화, 4월에는 천리포 수목원의 목련, 5윌부터는 광교 저수지의 수련이다. 수련은 고맙게도 초가을까지 볼 수 있어 틈만 나면 찾아간다.
오늘은 바가 오락가락하는 흐린 날씨다.
이런 날은 낮에도 만개된 수련을 볼 수 있다.
오랜만에 나선 금년 첫나들이라 오후에 서둘러 호수로 나갔다. 기대했던 대로 첫 수련이 물가 여기저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반자도 아니고 가이드도 아니고 도토리밥 꼴이지만 이제는 나도 엄연히 수련을 좋아하는 팬이다.
하나 둘 눈 속에만 담기가 아쉬워서 카메라 속에 담아 보았다. 덤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십자가 용으로 사용했다는 Dog wood 꽃도 함께 담았다.
저주의 의미로 dog를 머리에 붙었나 보다.
함께 감상해 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