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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그리고 쉼

by 김 경덕

항해 그리고 쉼


영겁의 시간을 따라

파도 위를 미끄러져

그는 왔다

이름조차 지워진 투명한 몸으로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담았는지

누가 보냈는지

잃어버린 사연만이

바람 속에 희미하다


바람은 그의 노래를 몰랐고

파도는 그의 사연을 모른다

오직 흰 거품만이

그의 긴 여정을 감싸 안았을 뿐


뜨거웠던 해는 지고

모래는 달빛에 식어가도

그는 끝내 말이 없다

지난날을 기억하는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


비워진 듯 가득 찬 그 속

보이지 않는 시간의 무게에

나 또한 잠시

말을 잃었다


2025, 6, 19


언젠가 태안에 있는 바닷가를

산책하다 파도에 밀려와 빛이

바랜 빈 플라스틱병을 보고서는

메모를 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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