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기행

by 김 경덕

70 기행

서울 정치판의 시끄러운 조국(장관) 발 막말 공해를 피해 남도 땅 제주에 내려왔다.

진정으로 조국(우리나라)을 사랑했던 70대 중반 노객들이 오랜만에 함께 뭉쳤다.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1959년 초등학교를 함께 졸업한 동창들의 졸업 60주년 기념 여행이다.

우리가 함께 흙먼지를 일으키며 뛰어 논 운동장은 남녘 땅끝 김해에 있다.

출신 지역 탓인지는 몰라도 대부분 전통 보수를 지향하는 착하디 착한 경상도 할비 할미들이다.


전후 세대인 우리는 안타깝게도 순종과 복종 때론 강압에 무조건 따라야만 미덕인 줄 아는 어두운 시대를 살았다.

가정에서는 부모님의 지시에 무조건 순종해야만 하는 절대 가부장 시대였고, 배움터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고 하는 삼강오륜이 최고 전성기를 누렸던 시대였다.

남자들은 군에서 상관의 명령에 맹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고 여자들은 시어머니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만 시집살이를 할 수 있었던 서글픈 시대였었다.

이렇게 힘든 시대를 지나오면서 우리들 모두는 그 험한 세월을 용하게도 잘도 기면서 살아왔다.

직장에서는 상사 눈치 보느라고 기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였고, 기계화가 되기 전에는 김매기를 하느라고 맨손으로 하루 종일 무논을 뒤지며 기어 다녔다.

또한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파라치온 같은 맹독 농약을 무서운 줄도 모르고 향수처럼 맡으면서 살아온 우리들이다.


이렇게 살아온 우리 모두를 향하여 스스로 " Fighting!"이라고 크게 외쳐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개개인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세대는 자기 느낌이나 생각을 아니면 자신의 뜻은 한번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아까운 세월을 냈다..

그래서일까?

오랜만에 자신의 기분을 드러내는 이번 제주도에서의 동창 여행이 일전에 있었던 광화문이나 서초동 정치 여느 집회보다 훨씬 더 멋있고 화려하고 재미있다.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로부터 들은 고향 말, 경상도 사투리는 몇 번이고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분명히 바로는 알아들었는데 전혀 엉뚱한 해석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되어 때론 가슴이 뜨거워지기까지 했다.


"갱덕아, 빨리 올라 타라"

" 어디로?"

손가락으로 자기 아랫두리를 바로 가리킨다.

"어디라고?"

" 배 위로"

"???"

송악산 유람선 타기 직전 일어난 일이다.

자기 배를 가리킨 것이 아니라 먼저 타고 있던 유람선 배 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로킨 것이다.

엉뚱한 오해를 내 혼자서 한 꼴이 되고 말았다.


"갱덕아!"

"손가락으로 밑을 꽉 잡고

우(위)에만 혓바닥으로 살살 할타 봐라"

"맛있을 끼다."

"???"

갑자기 거시기가 꽉 잡힌 기분이다. 건포도처럼 변해버린 누구의 젖꼭지가 갑자기 떠 올랐다.

마지막 날 밤 친구가 간식으로 콘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 왔다. 평소 풍치가 심해서 이빨이 시려 아이스크림은 잘 먹지 않았다.

권하길래 그냥 먹지 않겠다고 사양했더니 자꾸만 먹으라고 권하는 여자 동창생의 소리가 왜 나한테는 그렇게 음탕한 소리로 들렸을까?

나의 본성이 원래 저질이었나?


마무리 시간이 다가오자 우리 동창 중 가왕인 재생이가 마이크를 잡고 와이당으로 분위기를 뛰웠다.

우리 또래의 충청도 노부부의 침상 대화란다


"할 겨?"

"히봐"

뭔지는 모르지만 한참을 푸닥거린

영감한테 할미가

"한겨?"

다리를 혼자서만 겨우 건넌 하비가 죄책감을 느끼고서는

"또 혀?"

할미의 마지막 대답

"됏슈"

이놈의 영감도 나처럼 기교도 연장도 신통치가 않았던 모양이다.


집에 올라와서 충청도 출신 마누라에게 물어봤다.

마음대로 해라를 충청도 말로

뭐라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열렸 슈" 란다.


회장이 연말에 모임을 한번 더 하잔다.

그런데 모두들의 대답이 신통치가 않았다.

"열렸 슈!"

우리는 마음문도 옥문도 모두 다 열어놓았소!


2019, 10,19


수정하다. 202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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