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모양으로 변화하는 중이라고..
옛날 시골길.. 한적한 그 길.
어둑어둑 해질 때쯤 하늘의 회 빛깔의 빛으로 겨우 그 길을 걸었던 기억이..
"오빠 얼마나 더 가야 돼? 저만큼 가야 돼? 점점 어두워져 할머니 집이 잘 안 보여. 깜깜해..”
우리 오누이는 그렇게 어둔 시골길을 걸었었다. 서울의 밝은 빛에 익숙한 우리는 어두운 시골길이 그리 친숙 하진 않았다. 밖에서 동네 꼬마들과 놀다 어둑 해질 때쯤 우리는 그렇게 그 길을 걸어 돌아왔다.
"근데 오빠, 계속 걸어가니까 조금씩 보이는 것 같지 않아? 그런가? 깜깜한 게 좀 익숙해졌나?"
그렇게 우리는 그 골목, 돌멩이, 주변 집을 더듬더듬 기억하며 걸어갔다.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길, 그 길에 차츰 익숙해졌다.
조용히 꼼지락 거리거나 상념에 빠져 있을 때가 있다. 아주 천천히 붓을 잡고 사물의 머리카락 하나까지 묘사할 때 묘한 기분이 든다. 초반 단계에서 마지막 하이라이트를 주며 그림이 마무리가 다 되어갈 때쯤 지나치는 과정. 바로 중간 단계이다. 나는 작업 중간 어딘가의 느낌에서 오는 미지의 세계에 빠져들 때가 종종 있다. 언제쯤 이 과정이 끝이 날지.. 계속 새의 날개만 그리다가 시간이 다 갈지.. 새의 몸에 붙어있는 가느다란 실선 같은 깃털 하나하나 그리다 보면 몸 전체 깃털을 언제 다 완성을 하게 될지 말이다. 깃털만 계속 그리다가 가장 중요한 물체의 덩어리와 밝고 어두운 명암 단계를 놓칠 수도 있을 텐데 하는 걱정들 이런저런 생각에 휩싸이게 된다.
내가 작품을 하며 느끼는 중간의 과정, 비슷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중간의 단계를 맛보며 살아가고 있다. 어린아이에서 어른의 단계, 임신기에서 출산의 단계 그리고 결혼 전과 결혼 후의 단계를 말이다. 그 사이에서 거치는 통과, 즉 중간의 사이를 경험하게 된다. (Stenner 2017) 중간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단계이지만 정말 너무 중요한 사건이 된다. 이것은 다른 사건으로의 전환의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하나의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의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단계로 나아간다는 것은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이고 동일한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다. 새의 깃털을 가느다란 붓의 선으로 표현하며 그 속에서 오는 떨림을 느낀다. 중간 단계에서 오는 긴장감이다.
뭔가 표현하기 어려운 막막함이다.
비단벌레가 실크를 뽑아내며 작고 어둡고 컴컴한 통로에 익숙해질 때까지.. 그렇게 그곳에서 지냈다. 끝자락을 향해 끊임없이 천천히 그 시간을 보낸다.
끝이 보이지 않을 때 답답하다. 그 사람의 웅크리고 있는 뒷모습이 보인다. 뒤에서 안아주고 싶다.
익숙해질 거라고..
다른 모양으로 변화하는 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