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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경은 Jul 21. 2023

숲 속을 걸을 때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걷기


사실 이곳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걸을 곳이 그리 많지 않다. 아니 내가 잘 모르기도 하고.. 서울 한복판처럼 마음 놓고 길을 걸을 수도 밤거리를 거닐 수도 없다.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우리 집 주변에 있는 작은 둘레길 코스를 찾아 함께 산보를 가기로 하였다. 왜 그동안 이 좋은 산보를 할 생각을 못했을까? 아마 숲의 소중함 이라든지 걷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몰랐을 것이다. 생각할 여유도, 사는 게 바빠서(?) 그랬을 것이다. 아이들과 놀이터나 쇼핑몰에 있는 재미있는 놀이기구나 활동 혹은 집에서 놀기나 책 보기는 자주 하였지만, 내가 그다지 활동적이지도 않고 좀 상념적이기도 하였고.. 뭔가 안전한 느낌이 없는 것 같아서, 늘 실내만 맴돈 기분이라  나와 우리 가족은 늘 안전한 실내공간을 찾았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우리 가족.. 다양한 연령대가 모인, 1살 6살 8살 아이들과 엄마 아빠, 함께 동시에 할 수 있는 뭔가를 하고 싶었다. 남편은 어린 막내를 업고 난 두 아이들과 점심 도시락을 싸들고 짧지만 어찌 보면 긴 코스를 함께 걸었다. 걸면서 이런저런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고, 어제 함께 봤던 무서운 영화 장면도 그리면서 아이들은 힘들어하다가도 재밌는 나무 막대기랑 잎사귀를 찾아보며 나름대로의 즐거운 재미를 찾아봤다. 


러닝 머신은 몸은 단련할 수는 있다. 좀 지루하지만 단 시간에 운동을 하여 땀을 내고 세로토닌을 자극시켜 기쁨을 만들어준다. 또한 몸을 약간은 피곤하게 하며 개운하게 해 준다. 하지만 산보는 걷는 동안 속도와 높이를 달리하면서 지루함을 없앤다. 무엇보다도 가족과 함께 할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의 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 나뭇잎 밟는 소리와 나뭇가지 꺾이는 소리, 큰 나무에서 마른 잎사귀들이 낙엽이 되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숲 속의 향기, 청쾌하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시원한 시냇물과 숲이 우거진 향기와 온도는 이곳 남아공 힐크레스트의 7월 겨울을 더욱 잘 느끼게 해 준다. 대 낮에는 태양빛이 따사롭고 좀 뜨거워 겨울 같지 않지만 온도는 대략 낮아서 우리나라로 치면 늦은 봄 빠른 가을과 같다. 

시냇물 소리가 경쾌하다. 어렸을 때 송사리 잡는다고 하드(아이스바)랑 까까 싸들고 산으로 들로 다니던 기억이 난다. 물론 한국의 계곡과 같은 정경과 숲 속 내음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그때로 되돌아가는 것 같았다. 나도 이제 점점 옛 기억에 머물고 싶은지.. 늙었나 보다. ㅜ



상념이 사라진다. 


걷고 있을 때 뭔지 모르게 머리가 상쾌해짐을 느낀다. 내 몸이 이쪽 걸음에서 저쪽 걸음으로 옮겨 가는 것을 느낀다. 집 앞으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숲 속과 같은 둘레길 쪽으로 우리 집 멍멍이 수니와 짧게 5분 10분만 함께 해도 힐링이 된다. 수니가 이쪽에서 저쪽 코를 대고 킁킁대며 몸을 옮길 때 '우리 수니도 숲의 향을 맡으며 힐링을 하는구나' 하면서 저절로 나까지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내가 끌기보다 수니가 이끄는 곳으로, 내가 가는 방향이 아닌 수니가 가는 방향으로 조금씩 옮겨가는 것이다. 때로는 자연이 이끄는 대로 내가 이끌기보다 자연스러움을 느끼면서 서로 호흡을 맞춰간다. 


숲속을 걸어간다는 것은 테니스나 배드민턴과는 또 다른 기분이다. 


아무리 같은 숲 속이라도 계속 걷고 있다 보면 다 같은 장소가 아닌 게 느껴진다. 비슷해 보이는 숲길이지만 이쪽과 저쪽 방향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내가 가는 방향을 쭉 따라서 가다가 되돌아올 때는 왔던 방향을 반대로 돌아오면 또 느낌이 다르다. 그것도 아주 많이 달랐다. 숲 속 바위에 대놓고 활짝 핀 이끼들은 이곳 남아공의 숲에 물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물과 해가 적절히 조성이 되어 지금의 울창한 숲이 형성되는 것이다. 숲은 날마다 쉬지 않고 아침, 점심, 저녁과 사계절에 따라 변화하고 성장한다. 피고 지는 꽃과 나무들도 그 한 세계를 이루기 위한 성장일 것이다. 


더욱 신기한 것은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성장하여 숲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자연의 그러한 놀라운 섬세함을 나는 숲을 걸으며 누릴 수 있었다. 나의 모든 오감을 자극시키는 것처럼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다.  집 밖에 나와 숲을 들어가야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그저 영상에서 나오는 맑은 물과 자연의 소리 멋진 감상적인 화면에서 주는 감동의 몇 배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전체의 무대가 자연의 숲이라는 것과 차가운 온도와 공기 바람 흙내음, 소리, 아이들이 나뭇가지로 노는 소리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마음먹고 완전히 준비하기보다 간단하게, 두 손은 가볍게 짐이 없이 자주 나가야 한다. 이것도 훈련이 아닐까? 뭔가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여정, 여럿이서 함께 장시간 할 수 있는 간단한 활동 그런 점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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