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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경은 Aug 11. 2023

그냥 뛰지 말껄!

아무 일 없던 하루가 사실 행복한 거였어..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 


휴.. 하루하루가 반복적이고 늘 같은 일상은 때론 할 일이 없거나 새롭지 않아 보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24시간 걸리는 먼 거리, 드 넓은 초원과 자연이 주는 평화로움과 잔잔함은 나의 정신없었던 서울생활과는 차원이 달랐다. 눈앞에 자연이 펼쳐져 힐링이 되어 기쁘고 감사하다가도 뭔가 모를 고요함과 정적은 지하철과 복잡한 인파가 생각나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좁고 복잡한 곳에서 한적하고 평화로운 곳에 왔지만 다시 북적거리는 곳이 생각이 나는 이유는 뭔지.. 뭔가 향수병과 같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그렇지만은 않다. 뭔지 모를 이런 기분이 든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이젤 위에 그림을 그리는 일도, 새벽에 눈을 뜨고 이부자리를 벅차고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는 일도. 새로운 일이 일어나길 늘 기대하면서.. 가슴이 벅차오르고 가슴 설레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것도 잠시, 또 그 자리에 그렇게 그 일상이 또 같은 일상으로 이뤄져 갈 것이고, 그러다가 또 새롭길 더 기대하면서 말이다. 뭔가 일이 없다는 생각은 차라리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생각들과 근심으로부터 훌훌 벗어버리고 싶었다. 사실 부정적인 마음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오늘은 어제일의 다음 일이고 내일은 오늘의 다음 일상으로 전환된다는 걸 알면서 말이다. 매일의 일상에 감사하며 긍정적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그 속에 감추어진 기쁨을 찾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림 그리는 일도 글을 쓰는 일과 아이들을 키우는 일도 조금씩 발전하는 것이겠지 하면서 말이다. 한순간에 뭔가 달라지거나 좋아지거나 하지 않는다. 매일의 반복적인 연습과 긍정적인 행동들을 통해서 그렇게 쌓이는 것이다. 조금씩 실천하는 일을 통해서 어느 순간 무료해지고 지겨워지는 것을 그저 당연하게 여겨본다.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하나의 뭔가 보이지 않는 형체를 형성하게 되는데 어제보다 더 나을 수도 있고 덜 나아 보일 수도 있다. 그것은 내가 제자리에서 발걸음을 빨리하든 적게 하든 그것은 나의 인내심과 속도의 모습일 뿐이다.


가령, 아기가 ‘엄마’라는 말을 하기까지 수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함께 따라서 말해보게도 하였고 날 쳐다볼 때 ‘엄’ ‘마’,라고 말할 수 있게 해 봤다. 반복적인 단어 연습을 통해 아이는 내가 엄마라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게 아니다. 엄 마라는 음절을 끊임없이 해주는 - 자신 앞에 친숙한 사람이 그런 소리를 내는 사람이라고 점점 느껴지는 게 아닐까. 처음에는 아기가 그냥 그 음절이 쉬워서, 또 앞에 있는 사람이 계속 같은 말을 시키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겠지 했겠지만 끊임없이 듣다 보면 뇌에서 그런 친숙함과 친근함이 생겨 나와 음절을 이어주는 끈이 생기는 게 아닐까. 



일상의 무료함이 그리워지는 사건
벌써 보름이 지났다. 시간은 느리면서도 빠르게 흘러간다. 
이제 약간씩 새끼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계속해서 굽히고 하면 욱신거리기 때문에 많이 움직일수록 겁이 난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움직인다고 했던 자신이 많이 초라해 보였다. 어찌 보면 평범한 일상이 그리운 사건이 내게 일어나게 되었다. 아이들의 운동회날 엄마들 달리기 시합을 하다가 초반부에 그만 넘어지는 사고가 났다. 호각을 듣고 너무 속도를 냈는지 내 몸이 그 속도에 따라가 주질 못했던 것이다.  잘 달린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도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가지고 이제.. 한물간 것 같은 느낌에 서글퍼졌다. 뭔가 울적해졌다. 내 속도에 몸이 따라가 주지 못해 초반부터 넘어져 그만 새끼손가락 뼈에 금이 가게 되었다. 지금도 타자를 겨우 치곤 있는데 그림도 그리기가 쉽지 않다. 새끼손가락이 문제였다. 그 손가락으로 붓의 획을 그을 때 중심축이 되어야 하는데 그 축의 역할을 하기에 너무 약하고 굽혔다 펴기가 정말 힘들다. 붕대도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오른손으로 뭐든지 하던 내가 넘어짐 하나로 나의 오른손의 일을 왼손에게 양보해야 하는 일? 은 나의 일상 속도를 반으로 늦춰 버렸다. 모든 과정을 느리게 처리해야 하게 했다. 아무 일 없이 타자를 쳤던 날들을 그리워하며 그때를 감사해야 한다고…


엄마들 달리기 40분 전.. 그냥 달리지 말껄! 



매일의 반복과 일상은 사실 누구에게나 느낄 수 있는 무료함이나 나른함이 살짝 식 섞인 느낌이 있지 않을까. 특히 주로 3일째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 조금씩 지긋해지는 시점이다.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고 깊게 생각해 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 보면 무료해 보이는 속에서 나는 삶의 이유를 찾게 되고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에 대한 지루함을 달래 보기도 한다. 그 끝없이 반복적인 지루함 속에서 깨달음을 찾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나를 더욱 단단하게 성장케 하는 일을 하게 한다. 나는 언제나 제자리에서 그대로의 나인데 거울을 보면 입술 옆에 잔 주름이 어느새 하나씩 늘어나고 아이들은 커 나가며 내가 숨겨놓은 사탕들을 정말 구석구석 잘 찾을 만큼 영리해졌다. 하루하루는 늘 이렇게 변해간다. 그리고 사실이다. 그대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대로인 것은 하나도 없다. 지루할 틈이 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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