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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경은 Aug 22. 2023

“그래? 숙제 세게만 해도 돼?”

 “어…어, 그래”



셋째 1살 반 짜리 아이가 안아달라고 보채는 통에.. 


남자 셋 데리고 어느 정도 씨름을 한다. 사실 첫째 애  공부를 꼼꼼히 봐주기가 쉽지 않다. 좀 놔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기 공부 자기가 하는 거지 뭐.. 그리고 엄마가 크게 신경 안 쓰길 바라는 첫째. 2학년이다. 그래도 나름의 양을 정해주고 싶었다. 매일 한쪽에서 두쪽씩 하라고.. 문제집 같은 것도 그다지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고작해야 3권 정도이니.. 하지만 학교 숙제에다가 워낙 이곳 남아공에서 놀다 보니까 집에서 따로 내주는 한글 공부랑 산수가 재미없었나 보다. 아이 얼굴이 셀룩, 억지로 한숨 쉬며 꾸역꾸역 해 보인다 싶으면 난 그만해야 될 때가 됐구나 했다. 아이나 어른이나 누가 뭐 하라고 하면 하기 싫듯이, 우리 첫째는 학교숙제가 끝나면 엄마숙제가 늘 하기가 싫은 모양이다. 

“하고 싶은 만큼만 해볼까?”라고 하니까 얼굴이 방그레지며 화색이 도는 분위기였다. “아 그래? 그럼 문제 몇 개만 풀어도 돼?” 세게만? 나는 “어…어, 그래”라고 했다. 사실 이 방법이 꾀 잘 통할 때가 많다. 그렇게 즐겁게 책을 연다.  



아이는 저쪽이고 나는 요쪽이다



나도 학교 다닐 때 숙제해라, 공부하라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뭐 그리 눈에 띄지도 않았고 공부를 그다지 잘하지 않았다. 그림은 좋아했다. 그랬기 때문에 사실 애들한테 공부를 여기 해라 저 기해라 하기가 사실 별로이기도 하고, 내가 애들 공부를 이래라저래라 하기도 좀 그랬다.   


엄마 바보..

그때는 

엄마에게 서운했다.  

내 공부에는 관심이 없나 보다 했다. 다른 집 애들은 숙제나 다른 과제에 엄마가 옆에서 알려주고 시험도 대비해서 함께해 줬는데.. 난 엄마가 내게 너무 무심한 건지.. 그래도 내가 좀 잘하게 하고 싶지 않으셨을까? 공부.. 배운 게 별로 없다고 하시는 엄마.

원래 엄마들은 본인 어릴 적 못해본 것에 한이 맺히면 자녀가 잘하게 하려고 노력하지 않나? 엄마는 그런 쪽으로는 욕심이 없으셨나 보다. 


엄마는 정말 단순했다. 고집이 있었다.

하늘이 두쪽이 나도, 천둥과 번개가 쳐도 예외는 없었다.

하나 절대적이게 하는 일은 새벽 기도였다. 하지만 그것밖에 몰랐다. 새벽에 크게 생각이나 고민 따위는 없었다. 5시에 일어나서 준비하면 교회로 가셨다. 정확히 45분 뒤에는 들어오셨다. 난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좀 다른 한편으로는 날 자유롭게 놔두었던 사실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자기 주도적으로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정말 엄마가 간절히 하고 싶은 일 - 꾸준히 하는 모습은 배우고 싶었다. 



원래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좀 자유롭게 할 때 기쁘게 일을 성취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나?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서 계속해야만 하고 수동적으로 따르기만 한다면 꼭두각시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끝까지 좋아서 할 일 말이다. 아이들에게 공부가 될 수도 있고 책을 읽는 일이나 그리기, 운동, 피아노 치기가 될 수도 있겠다. 우리 어른들도 하루가 고되고 시킨 일만 계속해야 한다면 얼마나 빡빡하게 느껴질까? 마치 정해진 약속과 일정대로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렇게 행한다면 말이다. 그래서 그렇다. 우리의 삶 가운데 규율만 있다면 자율성이 얼마나 고플까? 새삼 느껴보는 하루하루이다. 숙제를 통해 약간의 정함과 자율성을 아이에게 선택함으로써 누군가의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정한 그런 약속에 관한 일이다. 



큰 애 '잭과 콩나무'연극 발표전 자율 시간에 - 학교에서 

좀 여유를 갖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스스로가 정한 결정에 움직이다 보면 좀 더 자유롭고 그 일을 행하는 것에 대한 기쁨과 성취감 마저 생긴다. 나도 학창 시절 기본적인 예절만 지키면 사실 크게 제한 없이 자유로웠다. 그것을 자녀한테까지 할 수만 있다면 더 그럴 것이다. 간혹 혼자 생각해 본다. 아이 혼자였다면 그 아이에게만 매달렸을 것을.. 셋이다 보니 각각 좀 분배가 되는 것 같아, 때론 한걸음 뒤에서 보게 된다. 공부시키는 것, 사실 그건 또 다른 아이분야가 아닌가 생각해 봤다. 기본예절이나 아이들이 노는 것 못지않게 분리돼야 하는 게 공부 쪽이 아닐까 한다. 결국 아이의 길이고, 앞날을 결정하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지 엄마가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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