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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Apr 03. 2020

마음의 엔진을 레벨 UP

버티고 _ 버티기



20대 후반 달리기에 빠져서 열심히 달리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마라톤 동호회 회원이었다. 동호회 회원들은 평일 밤 또는 주말마다 시간만 되면 모였고 추적추적 비가 와도 함께 달렸다. 우리는 양재천 자전거 도로, 한강 주변, 남산, 과천 등지를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녔다. 주말 이른 아침에 있는 마라톤 대회도 함께 모여 꼬박꼬박 나갔다.      


그 당시 나와 비슷한 시기에 동호회에 들어와 함께 뛰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나보다 체력이 더 좋아서 나와 같은 거리를 뛰어도 항상 힘이 남아있었다. 우리는 매번 옆에서 함께 뛰면서 서로 응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열심히 연습을 해나갔다.   

  

뜨거웠던 여름부터 시작된 우리의 달리기는 선선한 가을이 되니 더욱 속도가 붙었다. 가을을 맞아 동호회 회원들은 부여에서 열렸던 하프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고 나와 그 친구는 10km 코스에 참여했다. 어느덧 10km 달리기가 시작되고 우리는 출발했다. 


시간이 흘러 5km를 넘게 뛰니 힘든 시점이 또 오고야 말았다. 크게 숨을 몰아쉬며 결국 함께 뛰던 친구에게 말을 건넸다.     

 

“ 나 더 이상 못 뛰겠다. 먼저 가. 나는 천천히 갈게! ”      


내가 힘들어서 멈추려 하자 그 친구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 언니! 멈추지 말아요! 지금을 극복하면 ‘달리기 엔진’이 분명 바뀔 거예요! " 




데드 포인트를 넘으면 러너스 하이가 찾아온다.        


달리기에서는 힘이 들어 포기하고 싶은 시점을 ‘데드 포인트’라 부른다. 달리는 것을 그만 멈추고 싶은 매우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그러나 그 시간을 극복하면 찾아오는 ‘러너스 하이’가 있다. 러너스 하이가 찾아오면 행복하고 즐거운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뛰면서 기분이 점점 좋아지는 것이다. 이것을 한번 경험하면 달리기를 멈추고 싶은 순간이 찾아와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고통의 시간 뒤에는 분명 편안함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매번 뛰면서 비슷한 시점에 오는 데드 포인트를 계속 극복하다 보면 ‘달리기 엔진’이 새롭게 장착된다. 짜잔!! 하며 엔진이 레벨 UP 되는 것이다. 이제 그 데드 포인트는 다음 달리기 때에는 더 멀리 달리고 있는 지점에서 찾아올 것이다.    

  

가만가만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마음이 무너져서 주저앉고 싶을 때도. 끝날 것 같지 않던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그때도. 멈추지 않고 견디면서 한발 한발 나아가니 지나갈 것 같지 않던 시간들이 지나갔다. 깜깜한 터널은 결국 끝이 났다.      


그리고 그런 비슷한 상황이 다시 찾아올지라도 이전과 같은 데드 포인트의 레벨은 견딜만했다. 흘러간 시간들을 돌아보니 지치고 힘든 시간인 데드 포인트가 있었기에 내가 성장할 수 있었다.   


힘겨웠던 시간을 극복하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의 엔진이 변화된다. 삶에서 찾아오는 데드 포인트를 계속 극복하다 보면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의 엔진이 점점 진화되는 것이다. 달리기 엔진이 레벨 UP 되듯이 말이다. 




그러니 삶에서 마주하는 일들은 나를 좀 더 단단히 만들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 그리고 이것이 하나 둘 쌓여가다 보면 연륜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켜켜이 쌓아가면서 괜찮은 어른이 되어 가고 싶다. 


이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시기를 통해 내가 더 성숙해져 있길 바란다. 

결국 이 시간은 지나갈 것이니, 이 시간을 통해 무엇이든 나아갔으면 좋겠다.  






각자의 인생 속에서 찍고 있는 지금의 점이 시간이 흘러 선한 것으로 연결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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