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에는 토끼가 살았다.
뒷다리가 길쭉하고 달리기에 일가견이 있는 검은꼬리잭토끼였다.
검은꼬리잭토끼는 낮에는 숨었다가 밤이 되면 풀밭으로 나왔다.
가로등 불의 점화가 토끼의 밤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탁 하고 불이 켜지면 토끼들은 내 세상이 왔구나 여기저기서 깡충깡충 뛰어나왔다.
출발선에 대기하고 있던 달리기 선수들 같았다.
토끼는 어둠을 방패 삼아 풀을 뜯었다.
풀을 뜯으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한 발자국 다가가면 귀를 쫑긋 세우고
두 발자국 다가가면 앞다리를 들고 두리번거렸다.
세 발자국 다가가면 겁이 많은 토끼부터 줄행랑을 쳤다.
토끼들은 내가 그냥 지나치는 사람인지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인지
본능적으로 알았다.
가까이 보고 싶어 살금살금 다가간 적이 있었다.
이상한 나라로 안내해 줄 시계 토끼가 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냅다 달리는 토끼를 쫒아가기에 내 몸은 너무 크고 무뎠다.
이상한 나라엔 아무래도 작고 어린 아이만 들어갈 수 있나 보다.
괜히 토끼의 식사만 방해했다.
인간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데엔 잘 보이진 않지만 어떤 규칙이 존재한다.
가로등이 켜지면 토끼의 밤이 찾아오는 것처럼.
언제나 규칙을 어기는 쪽은 인간일 테다.
사용하던 공간을 내주어야 할 때 더 가지려 한다.
캠퍼스에는 너구리와 스컹크와 칠면조도 살았다.
이네들은 계 탄 날에만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