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Comstock Cir. Hastorf Unit 430
똑같이 생긴 문들이 양쪽으로 다닥다닥 붙은 좁고 긴 복도를 지날 때면 기숙사가 닭장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신식으로 지은 깨끗한 건물에 사시사철 아름다운 캠퍼스를 마당처럼 누리고 살면서 닭장에 비유할 수는 없는 거라고, 그렇게 염치없는 사람이 돼서는 안 되는 거라고 스스로 타일렀지만 그때의 심정은 정말로 그랬다.
4년, 5년, 6년, 남편의 박사 연차가 올라가면서 비좁은 원룸 생활에도 점점 지쳐갔다. 곧 끝날 걸 알았기 때문에 더 버거웠는지도 모르겠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타자 소리가 귀를 파고들어 신경을 갉아 먹는 날이면 작은 방 안에서는 숨을 곳을 찾지 못해 이어폰도 꽂아보고 이불을 뒤집어써 보기도 하다가 결국엔 날카롭게 남편을 내몰았다.
그러면 남편은 내가 미안해. 한 마디를 남기고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노트북과 키보드를 옆구리에 끼고 긴 복도를 지나 불 꺼진 세미나실에 들어가 일을 마쳤다.
잠든 아내를 깨울까 봐 살금살금 문을 열고 들어와 조심스레 옷을 갈아입고 살포시 침대에 누워보지만
몇 푼 안 주고 산 매트리스의 용수철은 온몸으로 출렁댔다.
남편은 깊은 잠에 빠지고 나는 선잠에서 깨어났다.
짐을 수납하느라 가슴 높이까지 들어 올린 침대에 누워 비스듬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로등 불빛이 창문을 타고 들어와 벽에 그림자가 어렸다. 동이 트고 가로등 불빛이 꺼질 때까지 그림자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서서히 밝아오는 하늘을 보았다. 결국 오늘도 잠들지 못했구나 푹 한숨을 내쉬면서도 분홍빛으로 물드는 하늘은 그저 예뻤다. 창문이 동쪽으로 나 있어서 잠 못 든 날에도 뜨는 해를 볼 수 있어서 마지막을 버텨냈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예정대로 졸업했고 우리는 해스토프 430호를 떠났다.
제대로 된 식탁이 없어서 어정쩡한 자세로 밥을 먹으면서도 친구들을 많이도 초대했다. 작은 소파에 친구들이 웅크려 자고 갔고 좁은 테이블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밥을 먹고 놀았다.
제니스 할머니는 이곳을 둥지라 불렀다. 둥지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초대해 밥을 먹었다. 할머니는 둥지를 떠나는 걸 못내 아쉬워하셨지만 나는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둥지는 어차피 떠나는 거니까. 이제는 정말로 떠날 때가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