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의 기억

5월 5일의 식사 일기

by 황경진

한국은 어린이 날이지만 미국은 평범한 수요일이었다. 남편이 팬케이크를 먹고싶어 해서 (남편은 대체로 먹고 싶은 게 많다) "The Breakfast Club at Midtown"이라는 가게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신나는 음악이 빵빵하게 흘러나오는 젊은 분위기의 카페였다.


남편과 사귀던 시절 딱 한 번 브런치 가게에 간 적이 있다. 서울에 브런치 붐이 일기 시작한 초창기였고 이태원에 몇 몇 유명한 가게가 있었다. 예약 없이 갔다가 몇 시간을 기다렸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맛있길래 이렇게 인기가 많을까 호기심이 생겨 어렵게 예약을 하고 남편을 데려갔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프렌치토스트와 팬케이크, 커피 두 잔 정도를 주문했을 것이다. 그리고 5만 원이 넘는 돈이 나왔다.

메뉴를 고를 때부터 표정이 굳어 있던 남편은 음식이 나오자마자 양도 눈곱만큼 주면서 고작 프렌치토스트를 이 가격에 먹는 건 용납할 수 없다며 화를 냈다. 이 가격이면 고기를 배 터지게 먹는다는 식이었다. 힘들게 예약해서 딱 한 번 온 건데 그렇게 화를 낼 일이냐며 나도 화를 냈다. 음식이 맛있었는지 어떤지는 기억이 없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기억만 선명하다.

나중에 신사동에 있는 회사에 취업하면서 가로수길에서 4년 간 자취를 했다. 브런치 붐은 이태원에서 신사동으로 이어져 가로수길에 유명한 가게가 즐비했다. 우리는 명동에 국밥을 먹으러 가고 오장동에서 함흥냉면을 먹고 경복궁역까지 삼계탕을 먹으러 갔지만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브런치 가게는 절대 가지 않았다.


미국에 와서 보니 한국에 들어온 것과는 달리 브런치가 비싼 음식이 아니었다. 대중적이고 대체로 혼자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양도 푸짐했다. 어느 동네를 가더라도 주민들이 애정 하는 맛집이 하나쯤은 있고, 그러다 보니 새로운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그곳의 브런치 맛집을 탐방하는 일도 또 다른 즐거움이 되었다.


코비드 이후 1년 넘도록 외식을 못하다가 오랜만에 식당에서 밥을 먹으니 기분이 좋았다. 서버가 따라주는 커피가 이렇게 맛있을 일인가 싶다. 날씨도 따뜻해지고 하나둘씩 문 여는 가게들을 보니 내 마음에도 활기가 돈다.




브런치 먹고 싸운 얘기를 최근 다른 친구에게 전했더니 그 친구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10년 전 한국의 초창기 고급 브런치 가게는 아무래도 커플 갈등의 원흉이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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