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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타네 집

담배와 고양이와 식물들

by 황경진


시타(Sita)는 영화 “소공녀(전고운 감독, 2017)”의 주인공 미소처럼 몹시 마르고 큰 키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젊었을 적에는 밤처럼 까맸을 머리카락이 점점 새벽으로 물들고 얼굴에는 세월만큼 주름이 졌지만, 아주머니라는 말도 할머니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 미소가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담배와 고양이와 식물들. 그녀의 집은 진한 담배 냄새와 초록색으로 눈이 빛나는 잿빛 고양이와 정원이 집안까지 밀려 들어온 듯한 커다란 식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시타는 그녀가 사랑하는 것들로 가득 찬 아지트에서 바깥출입을 단절하고 살았다. 눈이 닿지 않는 구석에 존재를 숨기고 있다가 내가 일어나 샤워하는 기척이 들리면 거품이 잔뜩 올라간 카푸치노를 만들어 나 몰래 탁자 위에 두고 가곤 했다. 나는 그녀가 회색 고양이 같다고 생각했다. 같이 살아서 점점 닮아가는 걸까. 그러는 나도 그녀의 집에서는 조용히 커피를 마시고 조용히 걸음을 걷고 조용히 잠을 자며 기척을 줄이는 고양이가 되어 있었다.


고양이와 식물들이 모여 사는 집안의 정적을 깨트리는 것은 시타의 기침 소리였다. 종일 집안에서 담배를 피웠으므로 그렇게 기침을 해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창문은 늘 열려있었지만 오랜 시간 쌓인 담배 연기는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키고 앉아 구석구석 집안을 누렸다. 처음 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한 번도 맡아 본 적 없는 진한 담배 냄새에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고작 담배 냄새 때문에 동네의 유일한 숙소를 포기할 수는 없었으므로 있는 동안 잘 적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는 모든 것이 좋았으므로. 노랑과 빨강으로 칠해진 벽과 신중하게 자리 잡은 앤티크 가구와 카펫, 그리고 식물들. 시타네 집은 시간과 연기에 퇴색되어 선명함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주인을 닮아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시타는 드물지만 그녀의 집을 방문하는 손님을 배려해 손님 방으로 통하는 응접실의 문만큼은 꼭 닫고서 담배를 피웠다. (응접실에는 손님용 재떨이가 따로 준비되어 있긴 했다.) 나의 침실은 그나마 담배 연기로부터 가장 안전한 곳이었지만, 밀도의 차이일 뿐, 아귀가 맞지 않는 문의 틈새로, 혹은 창문을 돌고 돌아 담배 연기는 끊임없이 내 영역을 침범했다. 나흘째 되던 밤 나는 목에 잔뜩 낀 가래를 토해내느라 심한 기침을 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도저히 안되겠다, 하루라도 빨리 이 집을 탈출해야겠다!


마침 친구의 결혼식도 끝나고 정리도 마무리되던 참이라 나는 급하게 호텔을 예약하고 하루 일찍 떠나게 되었다고 말했다. 시타는 놀라며 무슨 일인지 물었다. 나는 차마 담배 때문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그저 일정에 변경이 생겼다고 말했다. 나는 시타에게 매일 만들어준 카푸치노에 대한 답례로 전날 그린 화분 그림을 선물로 주었다. 시타는 떠나는 나를 꼭 안아주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품에서는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날 밤, 호텔에 도착해 트렁크를 열었더니 시타네 집 냄새가 그대로 따라와 있었다. 지내는 동안에는 몰랐는데 특히 매일 밤 입었던 잠옷에 냄새가 짙게 뱄다. 이렇게 얇은 옷에 어떻게 이렇게 깊은 냄새가 밸 수 있는지 신기한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여전히 목이 아팠으므로 결국 잠옷은 입지 못하고 그나마 냄새가 덜 나는 옷을 찾아 입었다. 잠옷은 따로 봉지에 담아 격리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짐을 풀면서 잠옷을 꺼내 남편에게 냄새를 맡아보라고 했다. 이게 시타네 집에서 나던 냄새야. 옷을 들고 냄새를 맡던 남편은 비행기 기압이 낮아서 그런가, 냄새가 다 빠진 것 같은데? 담배 냄새는 안 나, 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럴 리 없다며 다시 잠옷을 받아들고 코를 처박고 숨을 들이마셨다. 남편의 말대로 메케한 냄새는 모두 빠지고 비행기의 차가운 기운만 남아있었다. 그렇게 숨 막히게 진했던 시타네 집 냄새가 이렇게 쉽게 빠져버린 것이 나는 조금 분하고 많이 허탈했다.


시타네 집을 나오기 직전 급하게 내 침실과 통하던 작은 응접실을 그렸다. 빨간색 벽과 대조되는 초록색 이파리와, 의자와 테이블과 테이블 위의 재떨이, 그리고 파란 카펫. 방을 다 그렸는데도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어 한참 그림을 바라보다가 의자 위에 잿빛 고양이를 그려 넣었다. 그제야 그림이 완성된 것 같았다. 그림 속의 응접실에는 시타가 사랑하던 진한 담배 냄새도 남아 있었다. 냄새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나는 그림을 액자 속에 봉해 내 책상 위에 세워두었다. 나는 이 그림이 몹시 마음에 드는데 왜 때문인지 아직도 이유는 찾지 못하고 있다.


(20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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