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국현 Jul 14. 2023

11. 나, 오늘만 사는 놈이다.

<삶의 전투를 받아들이며 中에서>

11. 나, 오늘만 사는 놈이다.     



        죽음의 과정을 넘는 것은, 나의 시간이 멈추는 것이다. 더는 미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만 있는 것이다.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 ‘아저씨’ 속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너희들은 내일만 보고 살지, 내일만 보고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난 오늘만 산다.” 


        이 대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오늘 죽는다는 것이다. 오늘 죽어 갈 놈과 내일도 살아야 하는 놈이 싸운다면 내일도 살아야 하는 놈은 게임에서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내일 살아야 하는 놈에게 내일은 없는 것이다.    



     

        어제, 오늘, 내일은 과거, 현재, 미래이다. 어제와 오늘을 살았지만, 내일도 살아 있을지는 모르는 것이다. 오늘 ‘나는 나다.’라는 말을 하면서 존재감을 뽐내지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나’인지 모르겠다. 이상할 정도로 어린 시절의 ‘나’에 대해서 생각이 많이 난다. 

        약물에 취해 정신이 혼미할수록 더욱 그런 현상이 있다. 시골에서 소꿉친구와 흙장난하고, 개울에서 미꾸라지 잡고, 또래의 동네 아이들과 다방구를 하고, 두 살 터울의 막내 삼촌을 쫓아다니면서 참새를 잡아먹고, 메뚜기를 구워 먹었던 기억들이다.      



        의도하지 않아도 병실에 누워있으면 자연스럽게 떠 오르는 생각들이다. 어릴 적의 ‘나’는 과거 속에 있는 ‘나’이다. 그 아이가 지금의 ‘나’와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팔뚝에 연결된 바늘로 들어가는 이런저런 약물을 보고 있으면 자꾸만 과거의 ‘나’를 보러 간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20대, 30대의 과거의 ‘나’를 찾아간다. 스물의 시간이 가고 서른의 시간이 오니 열심히 살아야 한다면서 친구들과 밤새워 술 먹던 일은 바로 어제와 같은 기억이다. 추억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법이지만, 웃음없이 싸늘한 눈빛으로 과거의 ‘나’를 바라본다. 죽기 전에 생각나는 사람이 ‘나’라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에 따라 육체적 변화가 있었듯이,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성과 감성도 변하였다. 지식과 경험이 쌓여 간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추억에 빠지는 시간이 늘어난다. 문득 뒤돌아보면 모든 것이 변하였다. 놀랄 정도로 닮았지만, 과거의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니다. 아니 변한 것이 없는데 지금 변했다고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기억이 머무르는 것은 과거와 현재만이다. 아무리 매력이 넘쳐도 미래의 ‘나’를 보러 갈 수는 없다. 추억은 미래가 아니라 지나간 것에 대한 기억이다.     



        어릴 적에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 상처는 살아오면서 ‘나’를 변하게 하였다. 다른 사람으로 되었다는 것은 착각이 아니다. 살아오면서 만난 경험들은 사랑, 즐거움, 분노, 기쁨, 눈물 등으로 잊을만하면 번갈아 나타나 힘들게 하였다. 뒤죽박죽이었다. 후회는 살아본 것에 대한 감정이다. 살아보지 않은 것은 아쉬움이다. 살아본 경험과 살아보지 못한 아쉬움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과거의 ‘나’와 다른 ‘나’이다. 어제는 어제일 뿐, 오늘은 다른 것이다.     


                                             "과거의 나 = 현재의 나"


        생일날 신작로에서 막내 삼촌, 고모하고 놀고 있었다. 흙먼지를 뒤로 하고 달려오는 영구차는 5살이 된 내 앞에 멈추었다. 흙길에서 놀고 있는 어린 나에게 다가온 것은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생일에 아버지의 죽음이 왔다. 상복을 입고 허망하게 나를 쳐다보는 어머니의 모습, 절대 잊을 수 없는 내 기억의 시작점이다. 이보다 빠른 과거의 ‘나’는 없다. 그 아이가 지금의 ‘나’를 보면서 ‘너 누구니?’라고 묻는다. 아이의 눈빛은 당황스러울 뿐이다. 날 알고 있는 듯한 아이의 눈초리가 부담스럽다.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가 아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서로를 낯선 존재로 인식한다.     



        그렇다면 오늘 죽어서 미래가 없다고 불안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의미가 없는 것이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면 지금의 ‘나’에게만 있다. 과거의 ‘나’도 있고, 지금의 ‘나’도 있고, 미래의 ‘나’도 있지만 실재하는 것은 지금일 뿐이다. 지금 주어진 시간을 즐겨야만 하는 이유이다. 내일이라는 시간은 없다. 오늘만 살고 죽는다는 심정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 누가 나인가?"




작가의 이전글 10. 돈 = 행복, 그런데 죽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