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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Nov 12. 2024

006. 늙으면 죽자

<인간편>



  공원을 걷는 중에 노을을 만난다. 

  오후 햇빛이 사라질 무렵, 붉은빛이 하늘 한구석에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무너져 가는 나이가 되어, 석양을 보고 생각한다. 

  멋있게 늙어가자. 꼰대 짓, 추한 짓은 버리자. 늙어가는 아름다움을 즐기자. 



  요즘은 고령화 사회가 되어 빨리 죽지도 않는다. 사는 동안에 아름답게 늙어야 한다. 파란 하늘과 휜 구름을 사이로 떨어지는 태양은 붉은 물감을 물에 흩뿌려 놓은 듯 색의 농도를 달리하여 퍼져나간다. 발걸음이 가볍고, 삶에 의욕이 생긴다.     



  공원에 있는 화장실이다. 깨끗한 공중화장실이다. 

  아침저녁으로 청소하는 사람이 있는 듯 <담당자 확인>이라고 쓰여있는 손바닥 크기의 점검표가 입구에 걸려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는 것이 실감 난다. 살만한 나라가 되었다. 


  

  거울 속에 입을 반쯤 벌리고 싱겁게 웃는 남자가 보인다.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보이지만, 잘 늙은 얼굴이다.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으니 재미있게 살자는 생각을 한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가볍게 비비면서 입꼬리를 올렸다가 내린다. 왼쪽 볼에 보조개가 생긴다. 귀밑머리에 흰 머리가 보이지만 매력이 있는 노년의 남자로 보인다. 


  

  갑자기 아랫배가 바늘로 찌르듯이 아프다. 느낌이 갑자기 싸했다. 화장실에는 두 칸이 있지만, 이미 사람이 있다. 기다려야 한다. 물이 내려가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린다. 힘이 꼬리뼈 쪽으로 집중된다. 젊은 사람이 나오고, 허겁지겁 들어간다. 문을 닫고, 벨트를 푸는데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긴장이 사라지고 꼬리뼈에 힘이 풀린다. 괄약근이 풀렸다. 



  젖어가는 느낌이 온다. 


  이런 개뿔, 늙으면 죽어야 한다. 

  살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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