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죽음의 끝, 입맛을 다시는 아이

<귀신이야기>

by 경국현


야릇한 기분이다.
살면서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감정이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앞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그의 눈은 슬픔을 품고 있다.
그는 내 코를 손수건으로 닦고, 엄지와 검지로 내 콧망울을 가볍게 집었다 놓는다.
그 순간, 기억이 번쩍인다.

나는 지금 오락가락하는 정신의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
맑은 의식은 하루 이틀에 한 번쯤, 찰나처럼 스쳐간다.

그 짧은 순간, 나는 눈앞의 남자와 눈을 마주친다.
그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내 안에서 뒤엉킨 감정이 부르르 떨린다.
눈물이, 지랄같이 쏟아진다.

입안은 다 헐어 음식조차 삼킬 수 없다.
내 몸은 뼈와 가죽만 남은 채 누워 있다.
죽어가는 몸이다.

그 남자가, 슬픈 목소리로 말한다.
“엄마.”

아… 내가 엄마였구나.
암에 걸려 죽어가는 이 몸이 나였구나.
기억도, 몸도, 이제 거의 다 떠내려갔다.

그 남자의 뒤편, 누군가 서 있다.
자그마한 아이.
요즘 자주 눈에 밟히던 아이.
빙긋이 웃고 있다.

눈에는 검은 동자가 없다.
휜 자위만 가득해,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알 수 없다.
절간에 있을 법한 동자승 같기도 하다.
허공을 던지듯 나를 본다.
배가 고픈지, 입맛을 다시는 모습이 이상하게 낯설다.

그 순간, 아들이라는 남자가 몸을 숙인다.
입술을 내 귀에 갖다 댄다.

속삭인다.
“빨리 죽어라, 이 할망구.”

그 말이 귓가에 파고들고,
그의 눈빛이 얼음처럼 차갑게 내려꽂힌다.
오싹하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다.

찰나의 순간, 기억이 번쩍인다.
내가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웠는지,
그가 나를 얼마나 미워했는지,
그 모든 감정이 오감으로 밀려든다.

숨이 막힌다.
소름이 돋는다.
공포가 나를 짓누른다.

그리고 그 아이—흰 자위만 보이던 꼬마와 다시 눈이 마주친다.
그 눈에 검은 점 하나가 생겨난다.
뱀처럼, 눈동자가 형상을 이루며 나를 응시한다.
꼼짝할 수 없다.

그때,
내가, 또 다른 내가,
내 몸에서 빠져나온다.

누에고치처럼, 실을 뽑아내듯
나라는 존재가 내 몸에서 천천히, 고통스럽게 빠져나온다.

연기처럼 허공에 떠 있는 나는
그 아이의 입으로 빨려 들어간다.

짓이겨지는 고통이 온몸을 휘감는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통증이다.
비명을 지르지만, 소리는 어둠 속에 삼켜진다.

입맛을 다시는 그 아이.
빨간 입술, 내 혀를 문 듯한 기분.

나는 안다.
이건 나의 업(業)이다.
어미 노릇 하나 제대로 못했던,
그 모든 업이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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