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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Nov 19. 2024

007. 부부 원수(怨讐)

<인간편>



  우리가 같이 보냈던 좋은 시간만 기억해 줘,

  내가 잘못했어.

  한번 봐주면 안 돼,


  남자는 여자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빌고 있다.      



  여자는 삶이 끝났음을 알았다. 사랑이 가짜임을 알았다. 자기 인생이 가리가리 찢겨 나가는 거다. 사랑이 휘날리는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결혼생활은 끝난 것이다.     


  남자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방바닥을 보고 말한다.

  여자의 검은 눈길은 남자의 정수리를 향해 고정되었다.      



  남자 정수리에 쇠못을 박아 머리가 부서지면서 동서남북 방향으로 피가 흘러나오는 상상을 한다.

  여자의 검은 동굴 속 같은 눈동자에 웃음이 보인다.          



  2년이 지났다.     



  우리가 같이 보냈던 좋은 시간만 기억해 줘,

  나도 당신 용서해 줬잖아. 한번 봐주면 안 되나?


  여자는 남자에게 용서를 빌고 있다.      



  여자는 남자를 올려다보면서 말을 한다.

  여자의 얼굴을 보는 남자는 분노 속에 몸을 부르르 떤다.


  여자의 입술이 유난히 빨갛게 보인다.

  남자는 성적 파괴본능을 갖는다.

  여자의 윗입술을 이빨로 씹어 뜯어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유혹한 이브, 이브를 유혹한 뱀의 눈이 여자의 눈에 나타났다.    


 

  삶을 파괴하기 위해 운명으로 만났다.

  부부다.

  다른 말로 원수(怨讐)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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