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붉은 다락방

<귀신이야기>

by 경국현




교보문고 광화문점. 토요일 오후. 서가 사이로 사람들의 그림자가 부유한다.

그는 문학 코너 앞에 멈춰 섰다. 최근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이 진열된 테이블, 그 옆 한 칸 떨어진 구석에 이상한 책 한 권이 끼어 있었다. 표지가 없었다. 붉은빛이 바랜 회색 천 표지 위, 희미한 활자.

『붉은 다락방』

저자명도, 출판사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괜히 손이 갔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책. 펼치자마자 첫 문장이 도려내듯 다가왔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익숙한 듯 낯선 문장. 계속 넘겼다. 여자의 묘사가 나왔다. 붉은 조명, 타이트한 원피스, 맨발, 젖은 머리카락. 그는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아직 서점이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각자의 책에 고개를 묻고 있었다.

다시 책 속으로 시선이 빨려 들어갔다. 다락방. 여자의 손. 휘청이는 몸. 속옷이 벗겨지는 감촉.

1시간이 흘렀다.

책을 덮고 그는 스타벅스로 갔다. 구석 자리에 앉아 책을 테이블에 올리고 커피를 마셨다. 사람들은 그를 힐끗 바라봤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책을 읽는 나, 괜찮은 사람처럼.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손이 떨렸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아랫배가 간질거렸다. 그녀가 방금 전까지 내 위에 있었다는 착각.

다음 날도 그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찾았다. 『붉은 다락방』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이번에는 책장을 덮는 순간, 책이 저절로 다시 열렸다. 같은 장면. 같은 여자. 같은 욕망.

셋째 날. 책이 사라져 있었다. 그는 직원에게 물었다. 그런 책은 없다고 했다.

“『붉은 다락방』이요? 그런 책, 저희 재고에 없습니다.”

그날 밤, 그는 혼자 잠들지 못했다. 책장이 떠올랐다. 붉은 조명. 그녀의 손.

일주일 뒤, 교보문고에는 다시 이상한 책이 꽂혀 있었다. 이번에는 제목이 달랐다. 『젖은 입술의 여자』

하지만 첫 문장은 같았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그는 알았다. 그녀는 아직, 살아 있다. 그리고 그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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