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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Dec 03. 2024

009. 살인귀

<인간편>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두 사람은 궁합이 잘 맞듯, 살아가는 호흡도 잘 맞았다. 공기업에 있는 아버지가 푼돈을 모아 어머니에게 드리고, 아버지가 흘려준 정보를 가지고 어머니는 부동산 투기하였다. 

  복부인이란 말이 있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어머니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미친 듯이 돈을 따라다녔다. 서울에 있는 신도시, 분당, 일산, 평촌 등에 신도시 아파트를 사고팔았고, 뉴타운이 시작되면서 재개발·재건축의 분양권을 사고팔았다. 세종 신도시 땅을 사고팔았다.     


  어느 날 되돌아보니, 수백억 재산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돈방석에 앉은 사람들이다. 돈에 대하여는 죽을 때까지 자유로운 집이다. 번쩍거리는 샹들리레 불빛이 거실을 비추고, 고급스러운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신다. 1억 원이 호가하는 전등 불빛에 우아한 자세로, 고급스러운 말이 식구들 간에 오고 간다. 고급스러운 말, 식구들은 이렇게 대화를 하여야 한다.     


  투명한 사각 얼음이 담겨있는 술잔에 위스키 한잔 따르고, 맛을 음미하며 한 모금 마시는 모습이 보인다. 나를 향해 고개 돌리며 빙긋이 웃는 아버지이다. 아버지를 존경한다.      



  저 사람들이 내 부모였으면 했다. TV 속에서 나는 살아가는 재미를 가졌다. 어릴 때 그랬다. 행복하자 사는 거지, 불행하자 사는 것이 아니다. 어둠 속에 빛이 있다면 그 불빛은 TV 속에 있었다.     



  취한 술에 몸을 비틀거리며 쓰러질 듯이 문을 열었다.     


  “또 술” 


  버럭 지르는 소리에, 몸이 움찔거린다. 가슴에 울컥하는 소리와 뒷골에 팽팽한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신경질적인 거친 소리가 들린다. 거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김치 쪼가리에 소주 들이키는 눈초리가 사나워진다. 시선이 마주치고 욕을 내뱉는다.      


  잠시 뒤 “이놈의 집구석” 소리가 들리고, 현관문이 꽝하고 큰소리로 닫힌다.      


  내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다. 

  나는 그의 아들이다. 


  나는 술에 떡이 되었다.     



  나에게 욕하고 나가는 저놈은 내 아버지이다. 

  나에게 욕하고 나가는 저놈은 내 아들이다.     


  죽이고 싶다. 살인귀가 있다면 내가 살인귀이다.     


  이른 아침에 두 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아버지와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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