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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Dec 10. 2024

010. 색귀

<인간편>



  이른 새벽이다. 아무도 없다. 고요한 치악산 숲속 어느 곳이다. 암자에서 내려온다. 암흑의 눈이 하얀 눈빛에 반사되어 고요한 새벽을 깨운다. 얼어붙은 땅 위를 스치는 바람이 돌계단을 밟고 내려가는 발목 사이로 지나간다. 눈이 녹지 않았다. 올라오면서 계단을 쓸어야 할 것이다.  빨간 입술 옆으로 웃을 때 움푹 패인 보조개가 있는 보살님이 오는 날이다. 


  보살님의 하얀 얼굴을 생각하면서 산 아래로 허겁지겁 내련간다. 밟히는 눈이 신발 사이로 들어간다. 스산한 소리가 귓가에 지난다.     

 

  짐승 소리인지, 바람 소리인지, 귀신 소리인지 모른다.

  산기슭의 고요함에 섬찟함이 있다. 한올의 머리카락도 없건만, 머리가 바짝 서는 기분이다.      


  세상이 하얗다. 흑과 백의 경계선이 나타나는 시간이다. 여명의 햇살에 어둠이 사라진다. 돌계단이 끝나고 길이 보인다. 황량한 들판에 눈밭이 펼쳐져 있다. 눈이 부시다. 한쪽 눈을 찡그리고 고개를 숙이면서 밭 가운데로 걸어 들어간다. 


  무릎까지 눈에 잠긴다. 한 발짝 한 발짝 조금씩 나간다. 밭 한가운데 쌓아놓은 짚단 옆에 선다. 한쪽 구석 나무 사이로 들어간다. 주춤 허리띠를 푼다. 지난밤 참아왔던 오줌을 쏟아내고, 뻣뻣한 물건을 움켜쥔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감촉을 느낀다.     



  여인이 눈앞에 보인다. 여인이 뒤돌아선다. 연분홍 치마를 올린다. 


  입술을 잘근거리며 소리를 낸다. 여인의 차가운 엉덩이가 내 손에 닿는다.  

  차가움에 섞여 욕정을 끌어올린다. 단전에서 뿜어지는 쾌락이 뒷골을 치고 올라온다.     

 

  색귀가 웃는 것이 보인다. 

  매일 새벽에 색귀와의 약속을 지키러 산 밑에 내려온다.      



  암자에서 공허 스님이 치는 북소리가 울린다. 

  만물이 깨어나는 시간이다.     


  오늘은 보살님이 오시는 날이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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