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 태초에 귀신이 있었다

<귀신이야기>

by 경국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러나, 태초는 어둠이다.
빛이라곤 찰나조차 없는 깊고 짙은 흑암.
그 어둠 속에, 우리가 있었다.

빛이 생겼고,
어둠은 물러나 밤이 되었다.
그러나 밤은 어둠이 아니다.
어둠은 죽음의 세계다.

어머니의 자궁은 어둠이다.
그 어둠의 문을 열고 나와
우리는 빛을 처음 본다.

빛은 밤을 부른다.
밤은 빛을 부른다.
낮과 밤 속에서 우리는 살고,
그리고 죽는다.

죽음은 다시 어둠이다.
어둠에서 와서, 어둠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귀신이었다.
한때 인간으로 살았다가
다시 귀신이 된다.

생(生) 이전의 세계는 어둠(鬼)이었고,
죽음 이후의 세계 또한 어둠(鬼)이다.

남자가 여자를 부르고,
여자가 남자를 부른다.
흑암 가득한 자궁 속에서 귀신들은 기다린다.

그 어둠의 동굴을 뚫고
피를 뒤집어쓴 채,
우리는 세상에 태어난다.
그것이 나의 시작,
기원,
태초다.

태초는 귀신의 세상이었다.
낮과 밤이 생기기 전,
우리 모두 귀신이었다.

망각의 시간,
어린 시절.
그 밤이 무서웠던 이유는
밤이 어둠이 아니기 때문이다.
밤은 쾌락이고,
쾌락의 끝은
깊은 흑암으로 떨어지는 것.

그리하여 우리는
어른이 되고,
죽고,
다시 어둠으로 돌아간다.

귀신을 무서워하지 마라.
네가 바로 귀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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