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의 얼굴을 한 진실>
철학은 위선이다.
그리고 위선은, 늘 우리 곁에 있다.
철학자들은 자기 말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스스로는 정당하다고 믿지만, 타인에겐 궤변일 뿐이다.
해리 G. 프랭크퍼트는 『On Bullshit』에서 ‘개소리’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거짓말도, 사기나 헛소리도 아니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그 자체에 관심이 없는 말.
그게 개소리다.
그렇다면 철학도 개소리다.
자기만의 개소리다.
철학적 사유란,
위선 가득한 세상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
미로 속을 걷는 것이다.
진짜를 찾는 게임.
때로는 통찰이라 불리는 그 게임.
한때 신학은 철학 위에 군림했다.
철학자들은 생존을 위해 신학자들의 허황된 말에
동의하는 척을 해야 했다.
신의 존재를 철학적으로 증명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시대.
그러나 과학이 성장하고,
철학은 신학과 분리되었다.
드디어 신의 부재를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니체는 『즐거운 학문』에서 선언했다.
“신은 죽었다.”
절대적 가치는 사라졌다고.
칸트는 말한다.
신이 곧 도덕이라 했지만,
그 도덕은 결국 사람들의 욕망을
통제하려는 기준일 뿐이라 비꼬았다.
이 말을 신의 권위가 절대적이던 시대에 했다면
목숨은 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여전히 위선으로 가득 차 있다.
선의로 포장된 조언,
독이 묻은 말들.
우리 귀에 속삭이는 친절한 위선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선입견을 주입받는다.
그것이 고정관념이 되고,
진리인 양 믿으며 살아간다.
나는 51살에 백혈병을 진단받았다.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그 장막을 찢을 수 있었다.
책 읽는 남자가 되었다.
지식의 팽창이 일어났고,
세상을 보는 눈이 생겼다.
죽음은 내게 철학적 각성을 선물했다.
사람들은 친한 척, 사랑하는 척, 위하는 척,
희생하는 척, 축하하는 척, 슬픈 척, 웃는 척…
겉모습뿐이다.
속은 텅 비어 있다.
과자 봉지처럼.
뜯어보면 질소만 가득한 속 빈 강정.
거짓 포장에 쓴웃음이 난다.
불교는 말한다. 제행무상.
모든 것은 생멸하고, 변화한다.
그 실체 없음이 곧 고통의 시작이다.
기독교는 말한다. 원죄.
불교는 말한다. 생으로부터 시작된 고.
결국, 고통의 서사는 같다.
표현만 다를 뿐이다.
기독교는 ‘영원한 존재’를 믿으라 하고,
불교는 ‘영원한 윤회’를 믿으라 한다.
육체가 아닌 영혼으로 살아간다는
허상.
귀신의 세계.
그러나 나는 사람의 세계를 본다.
제3의 눈이 있다면,
귀신이 아니라 인간의 위선을 보아야 한다.
지혜의 눈은,
이 세상이 얼마나 거짓으로 가득한지를
꿰뚫는 눈이어야 한다.
작가 소개
경국현,
부동산학 박사. 백혈병을 계기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다.
『죽을 뻔하고, 철학에 빠졌다』 화, 수, 목, 연재 중.
쇼펜하우어와 니체, 그리고 신과의 긴 대화를 이어간다.
“죽음을 마주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