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신과 싸운 자의 고백

<고통은 현실이고, 행복은 허상이다>

by 경국현

불교는 중생이 번뇌를 떠나 열반에 이르기를 권한다.
하지만 번뇌란 단순한 고통이 아니다.
그 실체는 ‘갈애(渴愛)’라 불리는 욕망의 흐릿한 그림자다.

욕망이 고통의 뿌리라면,
생로병사는 그 잎과 열매다.
태어났기에 살고, 살기에 병들고, 병들기에 죽는다.
삶은 연속된 고통이다.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분별 있는 자는 쾌락이 아니라 고통 없는 상태를 추구한다.”
그 고통 없는 상태,
바로 열반이다.


나는 백혈병 투병 속에서 그 말의 진실을 실감했다.
행복을 좇았던 나는,
사실 이미 행복 속에 있었음을 몰랐다.
병실에 누워서야, 자신이 불행하다고 자학했다.

항암치료는 지옥이었다.
면역력 저하로 항문이 찢어지고,
목구멍은 갈라지는 듯한 고통이 반복됐다.
삶의 즐거움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고통만이 전부였다.


살아 있는 고통은
죽음보다 아프다.


그래서 나는 다시 신 앞에 무릎 꿇었다.
더 잘 살고, 더 많이 벌고, 더 높아지려 했던
나의 의지는 산산이 부서졌다.

욕망은 헛것이었다.

고통 앞에서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죽음만이 그 고통을 멈춘다.
행복과 불행—
그 모든 말은 의식이 있을 때만 가능한 이야기다.


행복은 허상이다.
고통은 현실이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그 말 자체가 욕망이다.
욕망을 버리지 못하면, 고통도 떠나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고통과 번뇌를 견디며 사는 존재다.

쇼펜하우어와 부처는 말한다.
“행복을 고집하지 말고, 고통을 줄이면서 살아라.”
그 말이 진실이다.


행복의 사회적 기준은 어리석다.
특히 타인의 기준은 더욱 그렇다.


부모는 자녀를 자기 자랑의 도구로 삼고,
자녀는 쇠창살 속 동물처럼 갇혀 산다.
관계에서 번뇌가 생기고,
관계에서 고통이 시작된다.


진정 행복한 이는
고통도, 번뇌도 없는 사람이다.
행복은 고통을 피한 결과이지,
현재의 쾌락이 아니다.

불행은 착각에서 시작된다.
세상이 천국이라 믿으면 그 기대 때문에 불행하고,
세상이 지옥이라 믿으면 오히려 그 지옥에 익숙해져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삶은
예측할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다.
그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숙명은 피할 수 없다.
악마는 인간에게 고통을 주고,
신은 그 고통을 지켜보며 유희를 즐긴다.

욥은 신과 악마 사이에서 고통을 받았고,
신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바치라 명령하며,
카인과 아벨 사이에 편애를 심는다.
신은 인간을 시험하며 웃는다.

그런 신에게,
나는 분노했다.


YOLO—You Only Live Once.
젊은 세대가 즐기는 이 말은,
사실 위험을 부르는 주문이다.


쾌락은 꿈이다.

깨고 나면 남는 것은 허무뿐이다.
허무는 더 큰 쾌락을 부르고,
그 쾌락은 중독이 된다.


신은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신의 놀이에 불과하다.


그러니, 싸워야 한다.
야곱처럼 신과 싸워야 한다.

“꺼져라.”


내 인생에서 물러가라.
신은 신이고,
나는 나다.



작가 소개

경국현,
부동산학 박사. 백혈병을 계기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다.
『죽을 뻔하고, 철학에 빠졌다』 화, 수, 목, 연재 중.
쇼펜하우어와 니체, 그리고 신과의 긴 대화를 이어간다.


“죽음을 마주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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