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존경은 나이로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늙는 법을 배워야 한다>

by 경국현

세상은 나이 든 사람을 존경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보이지 않는 규범이 그것을 강요한다.
세상은 바뀌었지만,
나이에 대한 존경만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과거 농경사회,
평균 수명이 짧았던 시절에는
늙은 이의 경험이 귀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고령화 시대.
안 죽고 오래 살아버리는 사회.
인류 역사상 지금처럼 오래 산 적이 없다.


늙은이의 경험은
점점 쓸모없는 것으로 변해가고 있다.


AI 시대, 4차 산업혁명 —
미래는 젊은이들이 주도하고 있다.


존경도 명성과 닮았다.
단지 명성은 능동적이고,
존경은 수동적일 뿐이다.


명성은 노력의 결과다.
존경은 그저 오래 살았다는 결과다.

그러나 존경은
시간만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았는가가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그저 늙었을 뿐이다.
멋지게 늙기 위한 준비도,
존경받을 만한 삶도 없다.


존경은 끝났다.
이제 노인은 돌봄의 대상이다.
부담이며, 짐이다.

70대 아들이
90대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시대다.


인간만이 ‘효(孝)’라는 추상적 관념을 만들어
스스로를 감시하고,
서로를 비난한다.


“효자냐, 불효자냐.”
그 판단의 기준은
사회적 시선에 있다.


요양원은 오늘날의 고려장이다.
죽음을 기다리는 곳.
그마저도 가지 못하고
방치되어 죽는 이가 많다.


노인의 세계엔
어두운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운다.
폭력, 비협동, 탐욕, 성적 일탈.
숫자가 많아질수록,
그 민낯은 더 분명히 드러난다.


실버산업은
그들의 욕망을 겨냥한 산업이다.


젊은이든 늙은이든,
결국 똑같은 인간이다.

나이만으로 존경을 요구하는 것,
그것은 이기적이고
미개한 태도다.


이제는
늙는 법을 배워야 할 시대다.
그리고
잘 죽는 법을 가르쳐야 할 시대다.


나이로 존경을 정하지 마라.
젊어도 지혜로운 자가 있고,
늙어도 멍청한 자가 있다.


존경은
누군가의 말처럼
쉽게 주어져서는 안 된다.


명성을 얻기 위해
노력하듯,
존경받기 위해서도
살아야 한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명성은 외적 요인이고,
존경은 내적 요인이다.


명성은
내가 만드는 것이고,
존경은
타인이 부여하는 것이다.


존경받고 싶다면
존경받을 짓을 하면 된다.


지적 능력도 없고,
도덕적 자질도 없이
그저 ‘늙었다’는 이유로 존경을 원한다면,
그건 단순한 착각이자
미개한 아둔함이다.


스스로 요양원에 들어가
고요히 죽음을 기다리는 것 —
그나마 품위 있는 늙음일지도 모른다.


존경을 얻으려 애쓰기보다,
존경받을 자격을 갖춘 늙음이 필요하다.

그것이
새로운 시대의 노인상이다.


고령화 사회는
인류가 아직 살아본 적 없는 공포일지도 모른다.



작가 소개

경국현,
부동산학 박사. 백혈병을 계기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다.
『죽을 뻔하고, 철학에 빠졌다』 화, 수, 목, 연재 중.
쇼펜하우어와 니체, 그리고 신과의 긴 대화를 이어간다.


“죽음을 마주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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