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속의 명성>
세상은 명예를 좇는다.
그 안에는 지위와 권력,
그리고 '성공'이라는 단어가 함께 묶여 있다.
나 역시 그 길을 따라 살았다.
겉으로 보기엔
대단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백혈병 진단을 받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 모든 것이
허구였음을.
삶의 에너지를
모조리 거기에 쏟아부었다.
돌아온 것은
허탈뿐이었다.
동물의 세계와 다르지 않았다.
수십 마리 암컷을 거느리는 수사자처럼,
나 역시
나의 ‘영역’을 증명해야 했다.
동물은 오줌으로,
인간은 명예로
자신의 자리를 표시한다.
사람들의 환호,
그것이 곧 명예였다.
하지만 사람은
순간만을 기억한다.
등을 돌리는 데엔
단 1초면 충분했다.
명예는
계속해서 에너지를 쏟아야만 유지된다.
멈추는 순간,
무너지기 시작한다.
시간을 초월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싸움,
그 싸움의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돈 버느라 개고생했더니,
살만하니 죽더라.”
이 말이야말로
명예의 실체다.
지성 없는 명예는
단지 허상이다.
공자는 말했다.
"군자는 배움을 좋아하는 자다."
지식 없는 명예는
지속되지 않는다.
결국 자랑질일 뿐이다.
사람들의 눈에 비친 자기 모습에
스스로 도취된,
의미 없는
허무의 퍼포먼스.
솔로몬은 말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명예를 말했고,
백 년 뒤 쇼펜하우어는
그것을 ‘명성’이라 불렀다.
같은 말이다.
인간은
돈과 명예, 쾌락을 좇는 존재다.
명성에는 두 종류가 있다.
일시적인 것, 그리고 지속적인 것.
지속적인 명성은
좀처럼 얻을 수 없다.
이름은 곧 돈이 되는 시대.
직업이 곧 명성이 되고,
명함 속 지위가
사람을 대신하는 시대.
사람의 탈을 쓴 괴물이라도
군중은 환호한다.
무명은 실패로 간주되고,
사람들은 진짜 자아를 숨긴 채
페르소나로 살아간다.
명성은 더 이상 고귀하지 않다.
질투와 시샘으로 일그러진
상처투성이다.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생전에 명성을 좇는 자는 가짜이며,
죽은 뒤에 얻는 자가 진짜다.”
그조차도
생전에 이름을 날린 시간은
7~8년에 불과했다.
이름은 곧 상품이 되었고,
과장과 거짓, 허영과 교만은
‘브랜딩’이라 포장되었다.
양심 없는 명성은 명성이 아니다.
명성을 위해
학문하고, 책을 쓰고,
사람을 소비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명성을 가진 자를 시기하고,
소문을 퍼뜨리고,
결국 공격한다.
진짜 명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 대신,
당대에 이해받지 못한다.
죽고 나서야
세상은 알아차린다.
그 명성은
죽어서 살아난다.
천재는 살아 있는 동안
바보들의 조롱을 받는다.
죽고 나서야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예수도 그랬다.
무지한 군중 앞에서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외쳤던 그였다.
그의 행적을 기록한 책조차
그의 죽음 40년 후에 쓰였다.
그리고 지금,
2천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의 이름은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경국현,
부동산학 박사. 백혈병을 계기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다.
『죽을 뻔하고, 철학에 빠졌다』 화, 수, 목, 연재 중.
쇼펜하우어와 니체, 그리고 신과의 긴 대화를 이어간다.
“죽음을 마주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