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IF Story>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 마태복음 5:18
이 문장은 예수가 산상수훈(마태복음 5~7장)에서 한 말이다.
산 위에서 한 그의 이 설교는 기독교 윤리의 정수로 간주되며,
신자와 비신자 모두가 들어본 문장들을 품고 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라.”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전제는 하나다.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
즉, 성경은 절대 불변의 진리라는 믿음이다.
성경은 지금까지 약 1,250개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우리말 성경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는다.
한문 번역, 영어 번역, 현대어 번역까지.
같은 구절도 단어가 다르고 뉘앙스가 다르다.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과연 진실인가?
히브리어 원전은
점 하나, 곡선 하나로 뜻이 달라진다.
예수가 말한 ‘일점일획’이란
그야말로 문자 하나도 바꾸지 말라는 선언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단어는 문화에 따라 달라지고,
의미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4,000년 전의 ‘보다’는
감시였을까
사랑이었을까
혹은 질투였을까?
우리는 모른다.
원서를 읽겠다고 히브리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성경 번역의 오류를 발견하고 희열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의미에 도달한 것일까?
4,000년 전 사람들의 언어적 맥락, 감정, 문화
그 모든 것을 복원할 수 없다.
해석은 결국, 상상이다.
성경은 원본이 아니다.
고대 문서들이 훼손되었고,
누군가 그것을 베꼈다.
점이 흐려지면 상상으로 채워 넣었고,
획이 사라지면 비슷한 글자를 넣었다.
이것이 수천 년 반복되었다.
우리가 지금 ‘진리’라고 부르는 문장은
그 수많은 복사와 해석,
상상과 오역 위에 쌓인
거대한 믿음의 구조물일지도 모른다.
마태ㆍ마가ㆍ누가ㆍ요한 복음은 예수가 죽고 수십 년 후에 쓰였다.
기록자는 예수의 삶을 문장으로 정리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예수의 입에 넣었을 수도 있다.
예수의 권위를 빌려
자신의 신학을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
성경은 모두 진실일까?
아니다.
진짜도 있고, 가짜도 있다.
가짜란
조작된 구절일 수도 있고
해석의 오류일 수도 있고
인간의 선입견이 덧붙은 신의 말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단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진리로 받아들인다.
그건 신앙이 아니라, 착각일 수도 있다.
신학은 철학이다.
논리와 해석, 해체와 조합이 가능하다.
신학자는 토론하고, 비판하고, 의심한다.
신앙은 다르다.
신학자와 싸우는 게 아니라,
신과 싸우는 것이다.
신앙은 나의 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아니라,
내 삶을 통과한 나만의 신.
성경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 질문을 멈추는 순간 신앙은 멈춘다.
신앙은 ‘정답’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붙잡고 끝까지 가보는 힘이다.
죽을 때까지,
내 신이 진짜인지
그 신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묻고 또 묻는 것이다.
그 여정이 곧,
신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