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그런 민족이라는 말 앞에서

by 노경문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행복을 잘 느끼지 못한다.”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심리학 교수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한국인의 뇌에서는 ‘아난다마이드’라는 행복 전달 물질이 세계 76개국 중 가장 적게 분비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작고 일상적인 즐거움에는 무감각하고,
큰 보상을 받아야 겨우 행복을 느끼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사계절 기후, 전쟁의 역사 같은 지정학적 이유까지 덧붙였다.

이 이야기는 과학의 외투를 입고 뉴스와 커뮤니티를 타고 퍼져나갔다.
댓글을 보니 “우리는 원래 행복에 둔한 민족이었구나.”라는 반응이 달렸다.
사람들은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해당 주장은 실제 과학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국가별 아난다마이드 분비량을 비교한 검증된 논문이나 통계는 국내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세계 최하위’라는 순위도, ‘유전자적 차이’라는 설정도 결국 구체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런 류의 주장이 사람들 마음에 빠르게 스며드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바로 그럴듯한 단정,

그리고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반복해온 자기비하의 서사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세상이 너무 복잡할수록, 사람들은 단순한 해답을 원한다.
“그냥 유전자 탓이다.” 그 말 한마디면 모든 게 설명된다.
누구도 탓하지 않아도 되고,
나조차도 조금은 편해진다.

사회가 불안하고, 내가 무력할수록

우리는 ‘바꿀 수 없는 운명’이라는 프레임에 쉽게 기대게 된다.

일종의 심리적 면죄부랄까.
책임도 덜고, 설명도 되고, 죄책감도 줄어드니까.

하지만 그렇게 단순화된 해석은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고착시킨다고 생각한다.

진짜 원인과 마주하지 않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해석은 일부 ‘사실처럼 들리는 과학’과 자연스럽게 섞여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예컨대 흑인이 탄력적인 근육 구조를 가지고 있다거나, 동아시아인이 유당불내증을 겪는 비율이 높다는 것은 일정 부분 과학적으로 검토되어온 유전적 특징이다.

문제는, 이런 검증된 과학과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 비슷한 문장 안에서 섞일 때 생긴다.


사실과 해석, 과학과 믿음이 뒤섞이고,
결국 대중은 전체를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번 아난다마이드 담론도 마찬가지다.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유전자 탓으로 환원하는 결정론적 이야기..

그건 문제의 원인을 타고난 본성으로 고정시킨다.

그리고 그 프레임은,
지금의 구조적 문제들조차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바꿔놓는다.
유전이라는 이름 아래, 사회는 책임을 피하고, 개인은 고개를 숙인다.

나는 순간, 역사 속 ‘우생학’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과거 나치 독일은 유전자를 근거로 인간의 가치를 구분하고, 차별했다.
그들은 “이건 과학이다.”라고 말했다.
그 과학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서사의 출발점이었다.

지금도역시 과학은, 설명이 아니라 권력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사람을 구분하거나, 불평등을 정당화하거나, 개인을 조종하기 위한 도구로 말이다.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행복하지 못하다’는 말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책임을 유전자에게 전가시키고, 그 현실을 바꿀 수 없는 운명처럼 포장하게 만든다.

정말 우리가 유전자 때문에 불행한 걸까?
아니면, 성과와 비교로 내몰리는 구조.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 요구하는 사회.
감정을 사치처럼 여기게 만드는 문화 때문은 아닐까?

이 질문을 놓치면,
우리는 앞으로도 어떤 문제든 “원래 그런 민족이니까.”라는 말로 단순화하게 된다.

행복은 유전되지 않는다.
불안은 유전자의 문제가 아닌,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드는 사회 때문이다.

기쁨은 물려받는 게 아니라,

매일 새롭게 배워갈 수 있는 감정이다.

과학이 사용되는 의도와 맥락을 묻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원래 그런 민족이니까.” 그 말 앞에서
너무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말아야 한다.

수, 금,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