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고 온 구직난 구인난

by 노경문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고 있고, 기업들은 사람을 찾고 있다.
일자리는 넘친다는데, 정작 일할 사람은 없다.
사람은 있는데, 마음 놓고 시작할 자리는 없다.
‘구직난’과 ‘구인난’이 동시에 벌어지는, 낯선 모순의 풍경이다.

이 기묘한 엇갈림은 어디서부터 어긋난 걸까.

한국경제인협회가 전국의 19~34세 미취업 청년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명 중 3명은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청년들이 말하는 ‘좋은 일자리’란 급여, 고용 안정성, 일과 삶의 균형이 보장된 곳이다.
그들이 원하는 최소 연봉은 평균 3,400만 원.
고졸 이하는 3,200만 원, 대졸 이상은 3,600만 원이다.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애써 시작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기다린다.

하지만 현장의 말은 다르다.
“사람을 구할 수 없다.”

식당, 중소기업, 편의점, 카페, 물류센터, 건설현장…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해 고심하는 업종은 넘쳐난다.

도심을 벗어날수록 사정은 더 심각하다.
인건비를 맞추면 수지타산이 안 맞고, 낮추면 지원자가 없다.

좁혀지지 않는 간극. 서로를 향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댓글들이 기억에 남는다.
“식당 중국인도 연 3,500은 받는다. 전업 알바도 2,800이 기본인데, 그 이하의 정규직을 왜 선택하겠는가.”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굳이 눈을 낮출 이유가 줄었다. 첫 직장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인식 속에서, 차라리 알바를 하며 자기계발하거나, 더 나은 자리를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

그리고 이런 말도 있었다.
“나 때는 감사하다하고 버텼다. 요즘 젊은 애들은 힘든 일은 아예 시작도 안 하려 하더라. 편하고 번듯한 일만 찾으니까 문제다.”

세 가지 시선이 공존한다.
현실에 발을 딛고 사는 청년들, 제도 속에 안착한 중년들, 과거의 기억으로 오늘을 해석하는 노년들.
모두 각자의 언어로 설명하지만, 누구의 말만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지금의 청년들에게 ‘일’은 단순한 생계의 수단이 아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전체가 뒤틀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 불안은 더 신중하게 만든다.
일을 회피한다기보다, 일의 방향과 의미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제도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가.

누군가는 열정페이를 비판하고, 누군가는 청년 기본소득이나 공정 채용을 제안한다.
하지만 정책은 늘 정치의 타협 속에서 흔들린다.
정권이 바뀌면 방향이 바뀌고, 시장 상황에 따라 기준은 다시 짜인다.

청년 초저금리 대출 정책만 봐도 그렇다.
좋은 취지였지만, 실제로는 부동산 과열과 가상화폐 광풍으로 이어졌고,
결국 더 깊은 빚의 구덩이에 청년들을 밀어넣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그 빚조차 ‘청년’이라는 이유로 탕감해주는 정책이 등장했다.

의도는 달랐을지 몰라도 결과는 또다른 불평등을 낳았고,
사회에서 ‘청년’이라는 이름에 씌워진 신뢰조차 깎아먹었다.

그래서 나는 ‘좋은 정책’이라는 말보다,
그 정책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먼저 본다.

제도에 기대기보다,
그 흐름과 구조를 먼저 이해하라.
정책에 실망하기보다,
그 틈 사이로 스며들 방법을 찾아라.

불확실함 속에서도 자신만의 무기를 준비하라.
실력을 쌓되, 방향을 잃지 마라.
쌓은 것들이 어디를 향하는지, 끊임없이 점검하라.

변호사도 부업으로 배달을 하는 시대임을 잊지 말라.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삶은 연습을 통해 완성된다.

정책이 해야 할 일은
모두에게 통하는 선언보다, 절벽 끝에 선 이들에게 닿는 설계가 필요하다.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면, 떨어지는 사람이라도 붙잡아야 한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제도는 설계될 수 있고, 수정될 수 있고, 때로는 무력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의 태도는 선택 가능하고, 유지 가능하며, 반복 가능하다.

나는 믿는다.
제도는 배경이고, 주인공은 개인이다.

그 믿음은 단순한 위안이 아니라,
매일을 버텨내는 태도이자, 자신을 다듬는 방식이다.
세상이 흔들릴수록, 내가 딛고 설 자리는 더욱 분명해져야 한다.
그 기준은 ‘무조건 열심히 하라’가 아니다.

상황을 탓하기 전에, 나를 조정하고 다듬을 수 있다는 용기.
그 용기만이 기회와 혼란의 틈 사이를 건너게 해준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오늘을 버티는 데서 머물지 않는다.

그는 쌓고, 기다리고, 다듬으며, 스스로 길을 만들어간다.
아무도 모르는 틈을 지나,

아무도 닿지 못한 곳에 조용히 이른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길을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화,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