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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Aug 27. 2020

[독서 기록] 헤르만 헤세의 찐팬으로부터

정여울의 <헤세X정여울>(클래식 클라우드)를 읽고 


헤르만 헤세의 고향 칼프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의 추억이 떠올라 <헤세X정여울>을 읽기로 마음먹었다. 이북 어플을 뒤져보니, 여행을 떠날 때 자료 조사차 정여울 작가의 <헤세로 가는 길>을 사둔 흔적이 남아 있었다. 칼프로 떠나기 전에도, 떠난 후에도 나는 그녀의 글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모두 읽은 팬도 아니건만, 그는 내게 큰 영향력을 끼친다. 헤르만 헤세라는 말에 뒤돌아보게 한다. 전에 알고 있던 지식은 작았고, 이 책을 통해 그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정도다. 내가 그에게 왜 끌리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좋아한다, 그를.


<헤세X정여울>은 이 책만으로 헤세의 생각과 작품을 함께 읽을 수 있다는 데에 별점을 다 주고 싶은 책이다. 모든 걸 다 아는 덕후는 아닌지라, 이 책을 읽어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실제로 책을 열어보니, 각 작품을 인용함은 물론 작중 인물의 시선에서 서술된 내용이 함께 있어서 작품을 모르는 사람도 줄기를 따라가는 데에 문제가 없었다. 좋은 덕후의 좋은 글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덕질을 이렇게 하면 인정받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반짝 들었다. 


넓고 다양한 호기심을 가진 나에게, 그녀와 같은 깊은 덕심은 결코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전에는 그런 나의 성향이 너무 가벼운 게 아닌가 생각했다.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려면, 깊게 탐구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나의 마음은 팬이라기엔 얕은 게 아닌가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이 좀 다르다. 나와 같이 사람을 위해 찐덕후가 책을 내주었고, 나는 그걸 읽으면서 호기심을 채우면 기만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팬이 정여울 작가처럼 그의 발자취를 쫓아가본 건 아닐 테고, 이런 팬, 저런 팬이 있는 거라면 나는 나대로 괜찮겠다 싶어졌다.


<헤세X정여울>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초반부에 있었다. 현재 나의 고민과 교차하는 지점, '꿈'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부분이었다. 


위대한 창작자들이 입을 모아 전하는 조언이 있다. 바로 '너 자신이 되라'는 것이다. 이 말은 아주 쉬워 보이기도 하고 너무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나답게,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최대한 나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라'는 단순한 조언으로 생각하면 쉽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나만의 목소리를 들으며,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말고 깊은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살라'는 의미로 생각하면 그 실천은 참으로 어렵다. (에고를 넘어 가에게로 가는 길 中)


꿈을, 나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나다움에 집중해야 한다는 프롤로그의 이야기는 정곡을 찔린 듯 훅 들어왔다. 사회적 자아(ego)를 신경 쓰느라 오히려 개인적 자기(self)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내 이야기처럼 들렸다. 진심을 말할 때 입이 막히는 건, 내 대답이 어떻게 읽히고 그로 인해 어떤 결과를 얻을까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생계를 얻어야만 하는 질문에서 솔직하고 싶다는 건 내 욕심으로 느껴진다. 이 두 가지에서 고민하다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하거나 거짓으로 포장하여 듣기 좋은 말을 하고 나온 이후에는 다른 눈이 나를 째려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반대로 진심을 말하고 기회를 잃게 되었을 때는 왜 진심을 숨기지 않았나 자책한다. 정여울은 이들 중 무얼 선택할지, 어떻게 표현할지 답을 내린 것 같아 부러웠다. 그녀의 셀프 노트처럼 나도 어딘가에만은 진실한 이야기를 쓸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놓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건, 창작하는 사람들의 고민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었다. 


쿤은 깨닫는다. 진정한 창조는 인간을 외롭게 만들며, 예술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소중한 무언가를 완전히 포기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을. 그는 다리를 다침으로써 '젊은 혈기'의 귀중한 일부분을 잃어버린다. 누구에게도 동정받기 싫었던 쿤은 친구는 물론 가족과도 그 아픔을 공유할 수 없게 되자 비로소 '완전한 혼자'가 어떤 느낌인지를 깨닫는다. (예술가 : 그 끝이 비극인 줄 알면서도 달려가다 中)


이상하게도, 걸작을 창조해낸 대가들은 외롭게 산 경우가 많다. 창작을 다룬 다른 작품에서도 이런 부분이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예술을 하려면 이렇게 살아야 했다'고 밝히는 부분들이 나온다. 예술가의 삶은 외로운 것이라고 정의 내려진 듯하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예민함은 사건에서 오는 감정이 극대화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주변인들이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아 혼자인 경우도 있는 듯하다. 그리고 생전에 큰 부를 누린 예술가들이 많지 않은데, 그 점도 그를 혼자이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내가 아는 예술가들의 삶을 통계화한 것이니 틀릴 수는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들은 외롭게 살았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그러한 결과를 이 책에서 보게 되니 슬펐다. 헤르만 헤세도 외로웠겠구나 싶은 마음이 하나의 이유고,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은 슬픔에서 도출된 것이구나 하는 게 두 번째 이유다. 이상하게 예술은 알면 알수록 슬퍼진다.


마지막으로, <헤세X정여울>은 예전 여행을 떠올려 볼 수 있어서 좋았던 기억을 남긴 책이었다. 독일 여행을 갔다고 했을 때, 칼프를 다녀왔냐고 묻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처음으로 이 책이 내게 "너도 칼프 다녀왔니?"라고 물어봐주었다. 여행 준비 당시, 후기조차 몇 개 없었다. 그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었는데, 이 책에 나온 사진 몇 장에 추억을 나눈 기분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헤세X정여울>을 읽을 이유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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