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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Mar 06. 2020

칼브를 아시나요?

헤르만 헤서의 고향 칼브 단상

사실 '도시 컬렉션'(사족: 도시-集으로 내고 싶었지만, 줄을 그을 수 없다 하여 같은 뜻인 컬렉션으로 제목을 수정하였다.)을 기획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곳이 칼브(Calw)였다. 

여행을 하면서 어느 나라를 갈지 많이 고민하고, 어느 나라를 가고 싶어서 행선지를 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2018년의 독일 여행은 칼브를 가보고 싶어서 독일을 갔다고 해도 좋을 만큼, 칼브는 내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도시였다.


그렇다면 독일의 칼브는 과연 어떤 도시일까?


칼브 역사에서 내려다보는 정경(출처 : 개인 소장)


독일의 소도시, 칼브.

먼저 그곳을 어떻게 가는지부터 설명하겠다. 일단 그곳을 가는 것은 쉽지 않다.

네 XX나 다음에 검색해도 칼브 여행기는 몇 개 되지 않기에 모두 숙독할 수 있다. 그 결과를 종합하여 말하자면, 일단 우리나라에서는 독일의 다른 도시, 공항이 있는 도시로 가야 했다. 가장 가까운 곳인지까진 기억나진 않지만, 나는 공항이 있는 곳 중 프랑크푸르트로 갔다. 프랑크푸르트 일정이 끝난 날, 배낭끈을 단단히 조여 메었다. 이제 떠날 칼브는 그곳에서 아주 많은 시간을 요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4일간, 나는 같은 한인민박에 머물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한인민박 주인과 친해졌고, 그분은 떠나는 내게 물었다.

"다음은 어디로 가?"

"칼브요."

"... 거기 독일이야?"

"네!"

그 말과 함께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으로 향했다. 열차 어플을 켰다. 미리 예매는 했지만, 두 번의 환승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15일 여행의 초반부였기에, 열차를 놓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열차 출발 30분 전에 미리 와 있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로 카를스루에(Karlsruhe)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포르츠하임으로 이동하고, 마지막으로 거기서 단 2량짜리 열차를 타고 또 얼마인가를 가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환승 내용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고 커피를 한 잔 사서 마셨다. 첫 환승지인 카를스루에는 이름도 모르는 곳이었다. 슈투트가르트로 가는 것도 보았지만,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다고 독일 열차(DB)가 추천해주는 루트였다. 환승 시간이 10분도 안 되었지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첫 열차가 30분 넘게 지연되는 바람에 모든 게 허상이 되었다. 나는 이름도 낯선 그곳의 역 안 스타벅스에서 내 얼굴만 한 커피잔을 들고 2시간을 기다렸다.


사실 프랑크푸르트에서부터 기차 시간들은 빨간색이 되어 지연을 알렸고, 카를스루에를 갈 때 이미 나는 늦었다는 걸 알았다. 독일 열차 지연에 따른 보상을 검색해보았고, 불가함을 알았다. 그래서 사실 환승지에 도착했을 때는 오히려 담담했다. 요기나 하면서 다른 차를 예매해야지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고, 2시간을 기다렸지만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지는 않았다.


마지막 기차를 탈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기차가 딱 2량 들어왔다. 그리고 들어온 곳으로 다시 흘러가는 것 같았다. 모두 눈을 굴리는 듯했다. 누군가에게 "제가 맞게 탔나요?"라고 물었지만 그 사람도 "아마도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래서 졸지에 독일 미아가 될까 걱정했다.


쫄깃함 끝에 보게 된 이정표 Calw (출처 : 개인 소장)


계단으로 캐리어를 끌고 내려갔다. 이미 어마어마하게 늦어버린 예약 시간이었지만, 예약한 호텔로 들어갈 시간이었다. 아고다를 통해 검색한 칼브의 호텔은 겨우 4개 정도였고, 그중에서도 여자 혼자 가서 묵을 만한 곳은 더욱 적었다. 그중 한 군데를 골랐고, 그곳의 이름을 Hotel Alte post였다.


노란 페이트가 예뻤던 나의 숙소(출처 : 개인 소장)


후기를 보아서 알고는 있었지만, 옛집은 엘리베이터가 없었고 24인치 캐리어를 들고 온 나는 숨차게 올라가야 했다. 여기서 우스운 일이 있었다. 차임벨을 누르면 주인이 나온다기에 몇 번이고 눌렀는데, 벨이 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도 못 오나 싶어 문에 귀를 대고 누르니 안에는 벨이 울리는 것 아닌가! 눈이 동그래져서 귀를 떼었는데 주인장이 나와서 웃으며 괜찮다고 들어가자고 했다.


안녕, 난 계단이라고 해. 너의 다리를 부수려고 하지.


해리포터에 나올 법한 기나긴 열쇠를 주고 두어 번 돌리니 문이 열렸다. 현대풍은 아니었지만 창이 있었고, 그곳으로 밖을 내다볼 수 있었다. 화장실에도 창이 있었다. 소담하니 좋은 집이었다. 내가 이곳에 오려고 했던 이유와 닮아 있었다.


침대에서 보면 벽장에서 누가 나올 것 같은 구조



이쯤에서 각설하고 이 긴 길을 돌아 칼브에 온 이유를 설명할 때가 된 것 같다.

독일 문학의 거장이라고 하면 두 명이 생각난다. 한 명이 괴테이며, 다른 한 명은 헤세이다.


이곳은 헤르만 헤세의 고향이다.

그리고 한스의 고향이다.

내가 이곳의 온 이유는 이곳이 소담한 그들의 고향이기 때문이었다.


헤르만 헤세 동상(출처 : 개인 소장)


숙소에서 광장으로 가는 곳에 놓인 다리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아마도 영원히 서 있을 것이다. 광장을 바라보는 남자는 헤르만 헤세였다. 이 사진을 구글에서 검색해본 적이 있었다. 일 때문이었다. 헤르만 헤세와 관련된 글을 적고 있었다. 영원히 광장을 바라보고 있을 이 남자가, 끝끝내 돌아보는 공간 칼브는 어떤 공간일까 궁금해졌다. 이 일을 마치고서도 그 생각은 끝내 지우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칼브로 떠나온 것이었다.


약간의 문학적 상상력을 보태어 그 사진 한 장을 보고 헤르만 헤세가 평생을 그리워한 도시는 칼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자전적 작품 <수레바퀴 아래서>에 그 향기를 남겼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향기가 아주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수도원에 들어갔을 때의 힘듦, 그 준비 과정에 대한 힘듦도 담겨 있다. 그런데 후에는 그마저도 추억이 된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 헤르만 헤세 박물관 앞으로 갔다. 전시관을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11시가 문 여는 시간이었는데 조금 일찍 도착했었다. 함께 기다리던 분이 물었다.

"기다리는 건가요?"

"네."

"어디서 왔어요?"

"한국에서 왔어요. 헤르만 헤세를 보러 왔어요."

"저는 친구와 자전거 여행을 하기로 했어요, 여기서부터. 그런데 여기에 헤르만 헤세의 집이 있대서 출발 전 데미안을 사서 읽고 왔어요."

"전 수레바퀴 아래서요."

30분을 기다리면서 나는 나이 많은 친구가 생겼다. 수줍게 인사를 하고 들어선 나에게 관장은 오디오 가이드를 한 대 대여해주었다. 사실 영어로 듣는 게 더 힘들었지만, 그걸 나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좋아서 들을 수 있다며 받았다.


멋진 헤세 님의 얼굴이 문앞에 딱!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와 옆 카페로 들어갔다. 그곳의 이름은 '몬타뇰라'였다.

그 이름을 보고 이곳은 마치 헤르만 헤세가 만들어놓은 곳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름은 그가 머물렀던 곳 중 한 곳의 이름이다.


몬타뇰라 카페 안에서(출처 : 개인 소장)


혼자 웃으며 마음속 가득 만족감을 안고 햇빛 아래로 나섰다. 그가 걸었을 공간을 걸어보고 싶었다. 물론 카페도 현대적인 디자인임을 알 수 있듯, 공간은 이전 그대로이진 않았다. 그래도 책을 생각나게 하는, 헤르만 헤세를 생각나게 하는 공간들이 눈에 띄었다. 광장 근처에서는 교회의 종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의 동상이 서 있는 곳에는 강이 흘렀고, 한스가 낚싯대를 드리웠을 법한 다리가 있었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취를 느낄 법한 곳들이 많았다.


또 한 가지,

이곳에 와서 느낀 매력은 와보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들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행지와 가까운 곳이 아니라 영어 메뉴판이 있는 친절한 여행지는 아니지만 사람들은 까만 머리의 동양인이지만 내게 친절했다. 그 독일인의 친절함을 여실히 느낀 곳이 여기였다.


나만을 위한 조식


숙소에서는 아침이 지급되었는데, 나 외에는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있었다. 나는 혼자였음에도 저 큰 커피 포트를 나만을 위해서 내주었다. 아주 작은 친절일 수 있으나, 나는 개인 여행자인 나에게도 다른 단체 손님과 같은 것을 내어주는 친절함에 좀 반했다.


다른 식당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외국인들에게 유명한 여행지가 아니어서 영어 메뉴판이 없는 것이었다. 내가 읽을 줄 아는 독일어라고는 bier(맥주)밖에 없었다. 당황해하는 내 옆으로 홀 매니저는 주방장을 불러주었다. 주방장은 메뉴를 하나하나 영어로 내 눈을 맞추어가며 설명해주었다. 귀찮아하는 기색도 없었다. 한 명의 여행객을 위한 친절은 그 도시의 이미지를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다음에 칼브에 온다면 그것은 헤르만 헤세 때문이 아니라 이 식당 때문일 것 같다는 생각까지 갖게 해주었다.


버섯 베이컨 크림 파스타, Restaurant Zum Alten Calwer(출처 : 개인 소장)



도시 컬렉션을 쓸 때, 가장 먼저 떠올린 도시가 이곳인 이유는 왔던 이유와 다시 오고 싶은 이유가 다른 도시였기 때문이다. 한 도시에 대한 생각이 가장 빠르게 변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때의 기억처럼 다른 도시들에 대한 기억도 떠올려보면 신기한 것들이 많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고향을 쓰고 나면 여기를 소개하고 싶었다. 헤르만 헤세의 정취가 묻어나는 문학적 공간이자 이방인에게도 친절한 이곳, 칼브를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다.


칼브가 어딘지 아시나요.


칼브는 헤르만 헤세의 고향이자

여행자에게 친절한 독일의 소도시입니다.


-fin



+글에 나오는 장소들의 이름은 아래 블로그에 더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kyungsun6145/22131955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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