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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Nov 14. 2020

[독서 기록]어쩌면 현실은 이보다 소설 같을 수 있다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고


유행인 것을 바로 접하지 않는 버릇이 있다. 귀가 얇은 편이라 남들의 감상에 잘 쓸려가는 편이고, '좋다' '좋다' 들어온 것을 보면 '좋다'고 느끼는 편이다. 그래서 다른 이들의 말이 잦아들면 그제야 찾아보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는 건 있지만, 취하고 싶은 만큼의 감상만 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마음이 넘치지 않는 한 유행을 조금 늦게 따라가고 있다.

<일의 기쁨과 슬픔> 또한 내게는 그러한 유행이었다. 출판사 홈페이지 트래픽을 폭발시켰다던, 대유행의 소설집이었다. 들려오는 내용도 흥미로웠고 읽고 싶지만 조금 시간을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뜬금없이 <소설보다 봄 2020>에서 장류진 작가의 작품을 만났다. (피해도 만나야 할 운명 같은 걸까?)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내 취향이었지만, 그래도 좀 더 시간이 흐른 뒤 읽고 싶었다. 그때가 바로 어제였다.

빌린 건, 일주일도 훨씬 전의 일이다. 지하철 대여기에서 <1cm의 다이빙>을 빌렸을 때 이 책도 하나 집어왔다. 소설만 읽지 않으려고 하는 도중에 가져온 나의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 죄의식이 동반된 즐거움)였다. 소설을 떠나려고 말해놓고 가져온 즐거움, 이 정도 죄책감이면 괜찮은 죄책감이라 생각하며 빌려왔다. 그러고 한참 동안 내버려두었다가, 어제 이불 빨래를 돌릴 때 <일의 기쁨과 슬픔>을 집어들고 나갔다.

세탁기에 이불을 돌리면서 책을 읽을 때 집중이 잘되는 편이라, 혼자일 때는 책 한 권을 들고 가는데 어제의 선택은 <일의 기쁨과 슬픔>이었다. 좋은 선택이었다. 짧게 전개되는 것도 그러했고, 소재들도 회사를 다니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일들이라 탕비실에서 남의 수다를 듣는 느낌으로 가볍게 읽어 나갔다.

회사와 관련된 작품을 읽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었는데, 상황이 바뀌어서인지 이번에는 '일'과 '직장'이라는 주제가 무겁지 않았다. 그리고 흥미로웠다. 일단, 이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이렇게 뽑아낼 수 있는 이야기가 많구나 싶은 데에 놀랐고, 그중 몇 개는 나 역시 본 듯한 이야기라 놀라웠다. 세상이 이렇게 문맥이 없었지, 하는 걸 인식한 소설이었다.


'왜 나는 안 줘?' 때문에 곤란해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물며 그렇게 묻는 사람이 빛나 언니일 줄이야. 빛나 언니라니. 지난 몇년간 머릿속에 떠올려본 적조차 없는 이름이었다.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언니는 꽤 오래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 <잘 살겠습니다>

나에게는 별로 친밀감이 없는 사람이, 나를 아주 친밀하게 여겨서 섭섭해하는 일이 생긴다든가


"사람들이 포인트를 그렇게 좋아하나?"
"다들 좋아하지 않나요?"
"그렇죠. 그래서 또 자신 있게 대답했지. 네, 좋아합니다! 그랬더니 뭐라는 줄 알아요?"
"글쎄요."
"그렇게 좋은 거면 앞으로 일년 동안 이차장은 월급, 포인트로 받게."
-<일의 기쁨과 슬픔>

감정이 태도가 되는 상사에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분노 몽둥이질을 당한다든가


정류장의 전광판을 올려다보니 방금까지 십분 뒤 도착이라던 문구가 사라지고 갑자기 '도착 예정 버스 없음'이라고 떴다. 도저히 안 되겠다. 땀으로 샤워한 채로 첫 출근을 할 수는 없어. 나는 뒤돌아 잰걸음으로 까페로 향했다.
-<백한번 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

30분 거리의 출근길을 두어 시간 먼저 나와도 지각하는 날이 있는 무논리가 존재하는 게 직장에 다니면서 겪은 일들이었다. 이러한 부분 부분을 오려 소설집으로 엮은 것 같았다. 그래서 인기가 있었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모두 이 논리 없이 벌어지는 일들과 함께 살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살아야 하니까, 이 책이 읽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더 소설 같은 현실에서 살고 있지만, 소설에서만큼은 좀 사이다를 마신 것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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