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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Apr 27. 2020

[독서 기록] 어떤 색 레몬

권여선의 <레몬>을 읽고



뿌연 레몬


올해는 <아직 멀었다는 말>을 읽은 주변 사람들이, 작년에는 <레몬>을 읽은 주변 사람들이 '권여선'을 추천했다. 도서관에서 한번 빌려보려 하면 예약대기 인원도 이미 가득 차서 실패하기 일쑤였다. 코로나로 미리 신청해야만 하는 지금이 아니었더라면, 게으른 독자인 내게 <레몬>이 내 손에 들어올 리 없었을 것이다. 검색을 해보니 <레몬>도 <아직 멀었다는 말>도 대여가 가능했고, 혹시나 놓칠세라 빠르게 대여 신청을 했다.


사진을 찍을 때야 알게 되었는데, 표지의 레몬은 보일 듯 보이지 않는 형상이다. 블러(Blur, 선명한 것을 흐리게 하는 효과) 툴을 사용한 것처럼 레몬은 흐렸다. 다언의 언니인 해언의 살인사건의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 듯 말 듯 설정되어 있듯 레몬도 이렇게 흐리게 만든 게 아닌가 싶었다.


한편으로는, 작품 속에서 다언이 저주의 주문이라며 '레몬'을 반복하여 읊는데, 그녀의 저주가 실현된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결과를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해언의 사건과 관련된 모두가 무언가를 잃어버린 삶을 살고 있다. 그중에 진짜 가해자가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다언의 저주가 완성된 건지 아닌지 모르겠다.



검은 레몬

 

<레몬>은 여타 스릴러나 추리 소설처럼 잔인한 묘사가 없었다. 그럼에도 다른 작품들보다 섬찟한 느낌을 받게 했다. 사람이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가를 일상의 언어로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언과 엄마는 둘이 살고 있지만 마치 해언까지 셋이 사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언은 절대 해언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누군가의 그늘에서 산다는 것은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다언은 자신에게 "혜은"이라 부르는 엄마를 처음 목격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언니의 죽음은 가족의 상실 외에도 자신의 상실을 다언에게 가져다준 것 같다. 그래서 더욱 복수에 집착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언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 그 사람을 벌하고 싶어서. 


만우를 찾아가 드잡이를 한 것도, 정준의 아이를 유괴한 것도 자신의 불안을 쏟아낼 누군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아이의 유괴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런 짓을 하면서까지 언니의 죽음에 연관된 모두를 벌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다언은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누구를 찾으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만우에게 말하고, 정준을 감시한다. 누구인지 알 것 같다는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호하게 한다.


점점 더 광기에 서려 가는 다언의 모습이 무서웠다. 일상의 언어로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해도 무서웠다. 살육의 장면을 묘사하는 것으로 오는 두려움과는 결이 다른 것이었다. 오히려 일상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에서는 이게 더 무서운 것 같기도 했다. 좀 더 무섭다고 생각했던 건 읽어도 읽어도 이 사태를 만든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짐작 가는 사람이 생기면 다음 장에서 생각이 뒤집어졌고, 뒤집힌 생각 속에서 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재설정하면 그 생각은 또 뒤집혔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내 생각 중 맞은 건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확정할 수 없다는 데에서 무서움을 가중되었다. 



어떤 레몬


작가 권여선이 생각한 '레몬'은 어떤 색일까 궁금했다. 나는 실제로 다언의 '레몬'이 어떤 색이라고 생각하고 읽었을까 궁금해졌다. 다언의 저주를 그녀와 나는 각각 어떤 색으로 생각하며 쓰고 읽었을까. 쉬이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그 색이 핏빛만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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