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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Nov 24. 2023

혹시 똥이 나왔나요?

AB형 여자가 두려워하는 것




출산의 순간은 번지를 위해 점프대에 서서 마음의 준비를 하는 찰나, 누군가가 뒤에서 밀어버린 것처럼 찾아왔다.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다 자지러진 순간 양수가 터지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다. 새벽 한 시가 우리를 뒤따르고 있었다. 가족 분만실에서 와이프는 바로 출산 준비에 들어갔고, 나는 대기실에서 어둠을 감싸 안은 채, 출산에 대한 낯선 두려움을 마주하고 있었다. 와이프가 준비하는 과정에서 관장을 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와이프는 관장 덕분에 얼룩진 변기를 차마 못 본 척할 수 없었다고 했다. 구태여 아픈 배를 부여잡고 변기를 청소했던 것이다. 똥물이 튄 관장의 기억을 흔적도 없이 지웠다. 양수가 터지고 진통이 오는 마당에 그깟 똥물이 뭐라고.


"출산하면서 변 나오는 사람 많죠?" 

와이프가 간호사에게 물었다.


"네. 당연히 나옵니다." 

간호사가 말했다.


분만실에는 심박동기가 있었는데, 하나는 와이프의 심장박동을, 다른 하나는 뱃속 아기의 심장박동을 측정하고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두 손을 꼭 잡았다. 내 손은 주기적으로 와이프 손톱에 움푹 파여갔다. 와이프는 출산의 고통에 직면하기 전까지는 똥이 나오는 것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을 너무 의식해서일까. 당최 와이프가 아랫배에 힘을 주지 못했다. 똥 쌀 때처럼 힘주라고 하는데, 자꾸만 얼굴에만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파도처럼 통증이 몰려올 때면 힘이 들어간 얼굴은 붉게 물들어 갔다.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뱃속 아기의 심박동이 요동치고 있었다. 

 

"얼굴에만 힘이 들어가고 있어요."

"힘을 제대로 못주면 아기가 힘들어해요."


아기도 나오려고 발버둥인데, 이때 타이밍을 맞추어 아랫배에 힘을 잘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산모와 뱃속의 아기 모두 지쳐버린다. 




비명과 신음을 오간 지 얼마나 흘렀을까. 처음에는 무통주사를 원했지만 마취의의 부재로 안된다고 했고, 다음에는 제왕절개를 원했지만 자궁문이 충분히 열릴 것으로 판단했기에 거절당했다. 모든 가능성이 거부당하자 몰려오는 쓰나미에서 살아나갈 희망이 없는 듯했다. 어느새 기진맥진해진 와이프가 말했다.


"내 도저히 못하것다. 흑흑."


이는 거의 와이프가 출산을 포기하고 싶다는 항복 직전의 절망 어린 외침이었다.


그 순간, 간호사가 외친 말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다.


"산모가 포기한다고 해도, 오늘 아기는 반드시 나옵니다."


이와 동시에 간호사가 와이프의 배 위로 말을 타듯 올라탔다. 그리고는 아주 터프하게 아기 엉덩이를 밀어 대기 시작했다. 순간 분위기에 파이팅이 넘쳐흘렀고, 와이프도 덩달아 분위기에 휩쓸려 있는 힘껏 다시 힘주기 시작했다. 자궁문이 더 열리고, 절정에 이르렀을 때 담당 의사가 왔다. 그리고 능숙하게 부분 절개를 하고 무엇인가를 쑥 꺼냈다. 그 무엇인가는 피와 점액으로 얼룩진 창백한 생명체였다. 머리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좁은 문을 통화하느라 뾰족하게 길어져 있었다. 그 무엇인가가 내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나는 아들을 본 것에 대한 감동보다는 뾰족한 머리 모양에 충격을 받고, 미끄덩한 탯줄이 한 번에 잘리지 않음에 놀랐다. 무엇보다 이제 끝이다는 안도감으로 와이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자기야, 이제 다 끝났다."  




전쟁 같은 출산의 과정이 모두 끝나고, 와이프가 물었다.


"나도 변이 나왔나요?"


간호사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우리 와이프는 연애시절에도 실수로 방귀를 뀌고는 헤어지자고 할 정도였다. 늘 완벽하고 아름다운 모습만 보이길 바라나 보다. 출산과정에서 나오는 변뿐 아니라, 회복과정에서도 자궁에 남아있던 노폐물들이 피떡이 되어 나온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더럽고 지저분하다는 생각보다는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출산으로 탄생하는 것은 아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동시에 위대한 어머니도 탄생한다. 


AB형 여자는 남보기 창피할 것을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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