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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Dec 01. 2023

거울 함 보래이

AB형 여자의 잔소리




우리가 다녔던 산부인과에는 산후조리원이 함께 있었다. 때문에 간편하게 산후조리원 예약과 함께 입성이 가능했다. 자연분만으로 병원에서 2일간 입원 후 산후조리원에서 2주간을 보냈다. 신생아들을 케어하는 공간이 별도로 있고, 다양한 육아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도 있었다. 복도 중간중간에는 산모들을 위한 안마의자도 배치되어 있었고, 좌욕을 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철저한 식단관리와 일과 프로그램이 짜여 있었고, 중간중간 아기 케어를 실습하는 교육프로그램도 있었다.


아기 모유수유는 엄마만 갈 수 있었고, 아기를 데려와 볼 수 있는 시간은 하루 10~20분씩, 2번 정도 뿐이었다. 아빠 식단은 없었기에 항상 밖에 나가서 끼니를 때우고 와야 했다. 와이프는 매일 공기압 마사지를 하고 좌욕을 했다. 그리고 나는 매일 저녁 뜨거운 물을 떠다 와이프 족욕을 해 주었다. 산모들이 거주하는 공간은 그렇게 크지는 않았는데, 무엇보다 무척 더웠다. 출산하고 관절 사이로 찬바람이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온도가 높다. 거기서 나도 2주간을 함께 있었는데, 너무 더워서 발에 습진들이 난리가 났다. 그때 생긴 발가락 습진으로 2년 동안 고생해야 했다.(아마도 이후 육아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면역력이 계속 떨어져서 그런 듯하다.) 산후조리원에서 우리 아기는 마치 묵언수행을 하는 스님처럼 너무나 평온한 모습이었다.(눈도 늦게 떴다. 감고 있을 때는 가로 눈 길이가 길어서 눈이 클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다른 아기들이 울 때, 우리 아기는 전혀 울지 않아서 벙어리인가 걱정하기도 했다. 2주간의 조리원 생활을 끝내고 나가는 날, 장모님께서 와주셨다. 이제부터는 아무 도움 없이 우리가 키워야 한다는 사실은, 마치 전세 계약이 만료되어 다른 집으로 가야 하는데, 집을 아직 구하지 못한 상황처럼 느껴졌다. 그나마 장모님께서 한 달간 함께 거주하며 와이프 몸과 아기를 케어해 주셔서 정말 다행이었다.




우리는 모유수유를 택했다. 모유는 소화가 잘돼서 일반 분유를 먹이는 텀이 3시간이라면, 모유는 2시간에 한 번씩 먹여야 한다. 밤에 잘 때는 텀이 조금 더 길어지긴 한다. 3~4시간에 한 번씩 먹였던 것 같다. 산모의 모유 양과 아기가 먹는 양이 잘 맞으면 문제없겠지만, 아기가 먹는 양에 비해 모유가 많을 수 있다. 이때는 수시로 유축을 해서 울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수시로 유축한 모유는 팩에 담아 냉동으로 얼려 두었다. 우리 아이는 모유를 먹다 보니 젖병을 싫어했지만, 잠에 취했을 때는 젖병을 빨기도 했다. 새벽, 아기가 배가 고플 때쯤 이면 몸을 뒤척인다. 나는 이 신호를 놓치지 않고, 미리 유축해 둔 모유를 젖병에 담아 물렸다. 그리고 아기는 잠결에 열심히 빨아댄 후, 다시 잠에 빠졌다. 그런 날이면 와이프는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대신 나는 아침에 잠을 보충했는데, 당시 일을 안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 번은 모유를 정량 먹였는데, 1시간쯤 지나자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나는 부랴부랴 아기를 안고 달래기 시작했다. 집에 오고 2주 정도는 정말 조용한 아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툭하면 울었고, 차츰 등센서의 감도가 살아나고 있었다. 드디어 눈과 귀로만 동양 했던 육아 지옥이 시작된 것일까. 한참을 달래도 울음은 태양의 열기처럼 주변을 가득 메울 뿐이었다.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아기는 계속 울었다. 그때 마침 와이프와 눈이 마주쳤다. 와이프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유심히 나를 보고 있었다.


"왜 이렇게 우는 거고?"

내가 말했다.


"오빠야, 거울 함 보래이."

그러자, 와이프가 조용히 말했다.


"응? 와?"

나는 거울을 보며 되물었다.


"한쪽 어깨 함 봐라. 그렇게 힘이 들어가 있으니까 애가 불편해한다 아이가."

와이프가 말했다. 마치 애 둘은 다 키워 본 사람인 줄 알았다. 


아, 그렇구나. 아무래도 아기가 너무 작고, 아직 내가 안는 게 어색해서 불편해서 우는가 보다 했다. 역시나 울음을 그치지 않자, 결국 와이프에게 아기를 넘겼다. 아기를 받아 든 와이프는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공연장에서 멋진 시범이라도 보여주려는 듯 의기양양 아기를 달래기 시작했다.


그렇게 5분이 지나고 10분이 흘렀다.


좁은 방안 가득 메우고 있는 태양의 열기는 사그라들지 않았다.(그때 내심 통쾌함을 느꼈다.) 내가 안는 게 불편해서 아기가 우는 거라더니, 본인도 똑같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먹잇감을 잡기 위해 천천히 다가가는 맹수가 드디어 덮칠 기회가 생긴 것처럼 와이프에게 한마디 했다.



니도 거울 함 봐라. 그 어깨 힘들어간 거 함 봐봐라.



그 순간,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아니 사실이 아닐 수도) 아기가 운 이유는 그저 배가 다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기마다 달라서 모유 정량이나 텀이라는 게 정해져 있지 않는 것 같다. 그 뒤로는 울 때마다 모유를 더 줬더니 울지 않았다.


AB형 여자는 "본인은 잘한다."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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