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형 여자가 추구하는 가치
우리는 결혼하기까지 순탄하지 않았다.(물론, 다들 그런 부분이 있을 것이다.) 부모님 반대의 난관을 거쳐 결혼에 골인했지만 1년간은 주말부부를 했다. 게다가 처음 시작한 신혼집이 장인 장모님 집의 와이프 방이었다. 30대가 훌쩍 지나서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신혼집이 원룸도 아닌 방이었다. 그때 당시 나는 직업도 없었다. 그러다가 새로 구한 직장이 서울인지라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를 했다. 이 때문에 와이프는 10년 넘게 일해온 직장을 관둬야 했다. 신혼을 주말부부로 지내기 싫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 둘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서울에서는 10평도 안 되는 풀옵션 신축 아파텔에서 월세로 생활했다. 둘이 지내기에 부족함 없는 아늑한 공간이었고 우리는 대만족 했다.
어느 날 밤이었다. 나는 잠을 자다 부스럭대는 소리에 깼다. 그리고 주방 구석에서 뭔가를 먹고 있는 그림자를 발견했다. 잔뜩 움츠린 어깨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자는 와이프였다. 우리 와이프는 긴장하는 상황에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버릇이 있다. 어떠한 일에 집중하거나, 긴장하거나 하면 무의식적으로 어깨를 올린다. 그러다 보니 어깨 뭉침과 두통과는 오래된 친구사이다.(겉으로는 대범한 척 보이나, 주변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다.)
"자... 자기야, 뭐 하고 있노?"
내가 말했다.
"자기 깼나?"
"아~ 배고파서 빵 먹고 있다."
와이프가 주방 싱크대에서 빵을 먹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빵 부스러기 때문이었다. 빵 부스러기가 바닥에 떨어지면 개미나 바퀴벌레가 나올 것이며, 그러한 상황을 맞이하기 싫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와이프는 단순하게 빵 부스러기 때문에 주방 싱크대에서 빵을 먹은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본 그녀의 뒷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고 있다.
한 밤에, 고향 떠나 연고도 없는 곳에서, 10평도 안 되는 작은 집에서, 가진 것 없는 남편을 만나, 반대하는 결혼까지 하고, 거창한 음식도 아닌 빵을, 서서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조용히 먹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
그것은 너무 안쓰러워 보였다.
때때로 와이프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난 큰 욕심이 없는 것 같다."
"가진 것은 없어도, 둘이 이렇게 소소하게 술 한잔하고 이야기하고 하는 것이 좋데이."
(우리는 지금도 아이가 자면, 일주일에 5번 정도는 함께 술을 마신다.)
이렇게 말하는 그녀였지만...
정작 매주 로또를 구매하고 있다.
"아... 놔. 오늘도 꽝이고."
그리고 이어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한마디 한다.
로또 여기 있네. 자기.
p.s)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나를 만난 게 로또만큼의 행운이라는 뜻이고, 또 다른 하나는 로또 번호가 안 맞는 것처럼, 우리 둘도 성격이 그만큼 안 맞다는 것이다.
언젠가 1등이 당첨될 것만 같다는 그녀. 그러면서도 소소한 행복이 좋다는 그녀에게 너무 감사함과 동시에 미안함이 몰려왔다. 예전에 김창옥 소통강사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그 사람의 뒷모습이 보이면 사랑에 빠진 것이라고 한다. "아이의 뒷모습이 보이는 선생님은 제자를 사랑하게 된 것이고, 부모님의 뒷모습이 보이면 부모님을 사랑하게 된 것이고, 아내의 뒷모습이 보이면 아내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녀의 잊히지 않는 뒷모습 때문에 나는 결국, 아들 돌잔치 때 펑펑 울고 말았다.
우리 와이프의 뒷모습이 그렇게 보이기 시작했다.
AB형 여자는 물질적 가치보다 더 나은 것을 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