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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란 Feb 05. 2022

이것은 디지털노마드인가 아닌가 #1

하나의 일 같지만 여러 개의 일을 했다

퇴사를 하고 캐나다로 올 때쯤, 두 건의 외주를 받았다. 두 건 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안 해본 건 안 해본 건데, 또 진짜 안 해봤다고 하기엔 좀 이상하고. 하여간 그런 일이었다.


한 건의 외주는 일단 흥미롭지 않았다. 게다가 조금 따분했다. 하지만 클라이언트가 너무 잘한다 잘한다 외쳐주었으므로, 칭찬 받으면 없는 재주도 부리는 인간이었으므로, 제때 일을 끝낼 수 있었다.

더 잘할 줄 알았던 다음 외주가 문제였다. 제공된 소스에서 건질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긍정적인 피드백이 오지 않았다. 하기 싫어졌다. 마침 함께 일해야 하는 쪽에서 추가 내용을 주지 않고 있었다. 그만두자고 생각했다.


그때쯤, 또다른 외주가 들어왔다. 

"저는 수정이 없는 초반 작업을 기대하고 의뢰드리는 거예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안 한다고 했어야 한다. 보통 계속 수정하는 이유는 하나다.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니까. 세 번을 수정해도 오류는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수정이 없는 초반 작업이란 있을 수 없다. 아니, 그런 재주가 있었으면 내가 월급을 더 받았겠지... 거기다 제공된 소스가 썩 좋지 않았다. 일을 시작하자마자, 굉장히 까다롭고 힘든 작업이라는 걸 직감했다. 서둘러 발을 빼려고 했으나, 클라이언트가 작업료를 올려주는 바람에... 한 일주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일을 하고 말았다.

파일을 전달했을 때 클라이언트로부터 "다음 달에 또 외주를 줘야 하는 일이 하나 있는데 그것도 부탁할게요"라는 말을 들었고 거절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여서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어렵다는 그럴 듯한 핑계를 댔다. 그때 담당자가 내게 한 말은 바로 이거였다.

"돈 벌어야 하지 않아요? 그래서 내가 꾸준히 일거리 주려고 한 건데."

내가 돈은 없어도 가오는 있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일을 계속하고 싶지는 않다는 거다. 내 경제상황에 대해 알 리 없는 상대가 마치 날 불쌍히 여기는 듯한 말투는 돈 없어도 사양이다. 내가 반드시 돈을 벌어야만 우리 가정이 굴러가는 상황이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자존심이었는지 자격지심이었는지, 이 일 이후 들어오는 일은 다 마다했다. 생각해보니, 한국에 있는 프리랜서 작업자에게 의뢰하면 훨씬 편할 텐데 굳이 나에게 줄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왜 나한테 일을 주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똑같은 패턴으로 일을 주고 똑같은 말을 하는지.

"초반 작업만 진행해주세요. 그런데 완벽했음 좋겠어요. 아시죠?"

아니. 모른다. 그런 거.


SNS에 아예 선언했다. 저는 당분간 외주를 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도 제안이 하나 왔다. 크게 힘들지 않을 거 같았고,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 승낙했다.

역시 남의 돈을 버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안 힘든 일은 애초에 없었다. 이건 클라이언트 위에 또 다른 클라이언트가 있었는데, 나에게 일을 준 클라이언트의 피드백을 반영하고 나면 또 다른 클라이언트의 수정 사항이 있었다. 애초에 수정은 두 번이라고 못 박은 게 무색해졌다. 그래도 재미있었어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울었을 거다.


비슷한듯 다르고 다른듯 비슷한 이 일들은 어쨌든 나와   맞았지만  꾸준히 들어오기 힘든 일이기도 했다. ( 완벽한 초반 작업 제안이 들어올까 ) 또다시 SNS 외주 중단 선언을 했다.


하지만...

나에겐 내가 파놓은 우물이 하나 있었다. 깊지만 너무도 맑고 투명해서 당장이라도 풍덩 뛰어들고 싶은 물.


- 2편에 계속

(새벽 네 시에 잠이 안 오는 와중, 갑자기 이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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